Lee Soo-Dong
이수동의 이야기 그림
이수동은 이야기꾼이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은 이야기 그림이다. 따라서 그림책을 보듯 바라보아야 한다. 인상적으로 얘기하자면 따뜻하고 아름답고 애잔한 내용들이 깔끔하게 그려져 있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동화책의 삽화나 가슴 떨리는 싯귀절을 응축시켜놓은 시화를 닮았다. 오늘날 미술을 통해 이런 감상의 여지를 수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다. 대중적인 그림, 친근하고 장식적인 그림의 한 전형으로 다가온다. 그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곧바로 정서적 감염을 동반하면서 흐른다.
현대미술이 미술에서 문학성을 배제하고 이야기를 추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지만 그림, 이미지가 본원적으로 유발하는 상상력과 감정, 내용을 증발시킬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이수동은 미술에서 그 문학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편이다.
그는 이미지를 단어 삼아 내밀한 연서를 쓰고 기억과 추억을 시각화한다. 일종의 시화 혹은 그림일기에 근사(近似)하다. 추억이 많은 이들은 이미지의 힘을 빌어 기억을 불멸의 존재로,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 것들에 눈의 축복을, 몸을 갖지 못한 아련하고 착잡한 상처들에 남루한 신체를 만들어준다. 화가란 바로 그런 존재이다.
무엇보다도 이수동의 이 이야기그림은 한국인의 보편적인 인성과 정서에 겨냥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 안에는 동양의 자연친화적 사상과 인간과 자연의 동일한 유기적 존재감으로서의 연대감이 충만하고 식물적 상상력이 무성하다. 아울러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으로서의 ‘연애’와 사랑, 이성에 대한 애틋한 연정과 함께 삶의 고독과 스산함, 이별과 소멸 등도 비처럼 스며있다.
나는 적지 않은 세월동안 그 그림, 문장을 익혀왔다. 그것들은 유사한 구성과 연출에 힘입어 매번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여전히 감상의 즐거움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 점이 이수동 그림의 힘일 것이다.
그의 그림은 한 눈에 쏘옥 들어오는 문장이다. 어렵거나 난해하거나 혹은 번잡스럽지 않다. 간결하고 명징하고 더욱이 서늘하다. 그의 그림은 단촐한 형상과 허전해 보일 정도로 비어있는 공간연출, 광활한 자연과 상대적으로 작게 위치한 사람의 크기, 일러스트레이션에 유사한 도상과 캐릭터, 평면적으로 칠해놓은 색채화면, 사물과 인간의 자유로운 배치 등에서 그 이야기가 무척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서늘하고 아련한 느낌, 애잔한 비애감이나 아련한 연민을 반복해서 흘려놓는 분위기를 즐겨 감상한다. 비록 상투화된 낭만이거나 소박한 우화성과 한정된 문학적인 상상력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도 그의 문장화된 그림들은 왕성하고 무성하며 자기 삶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자가 발전적인 에너지가 있다. 그는 고갈되지 않는, 지치지 않는 그리기의 욕망과 서술에의 갈망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
마치 이중섭이나 장욱진의 그림처럼 그의 그림 역시 자신의 체질이나 심성, 일상에서 풀처럼 자연스레 자라 나오는 것들이다. 그는 늘상 자신의 그림 속 장면을 떠올리고, 상상하고 회상하며 그 이미지들과 함께 한다.
자작나무 숲이나 흰 눈이 가득 쌓인 숲 속, 쏟아지는 폭포나 휘영청 밝은 달밤 아래, 지극한 수평으로 평화로운 수면 근처, 구름과 꽃이 있는 풍경에 남녀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장면은 그가 연출한 그림의 전부다. 모든 그림에는 애틋한 별리와 극진한 연애의 감정들이 애잔하게 드리워져있다. 이는 그가 우리에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들려주는 노랫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익숙한 시나 노랫말이 절로 떠올라줄 것 같다.
이수동은 화가이기 이전에 작곡가나 시인의 품성과 정서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덧붙인다면 드라마 연출가나 영화감독의 자질도 엿보인다. 그는 남자와 여자, 시인, 달, 자작나무, 집, 구름과 하늘, 바다와 호수 등의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구성연출을 통해 또 다른 풍경, 이야기,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보인다. 그것은 이수동에 의해 그림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그 드라마는 비록 우리네 삶이 통속적이라 해도 늘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파생되는 주체못할 감정과 슬픔, 상처와 연민을 다스리고 자연을 통해 새삼 상처를 치유받아 싱싱하게 살아나 아직은 살만한 삶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힘으로 반사된다. 아마도 이 점이 그의 그림이 지닌 힘일 것이다.
박영택 미술평론, 경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