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xel KIM
Pixel KIM
3:20 A Pixel’s Prayer
May 1 – 20, 2024
Opening May 4, 2024 Sat. – 12 pm.
Gallery RHO
드로잉 폭발 실험실 / 픽셀의 (행복한) 실험여행
신보슬(큐레이터)
행복한 예술가를 만나러 가다.
예술가들과 오래 일하다 보면, 그래서 조금 가까워지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창작활동 의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녹녹치 않은 삶의 무게를 버텨나가야 하는 버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삶이 버거운 것이 어디 예술가 뿐일까. 다들 그렇게 산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 아간다.
픽셀킴을 만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활짝 웃는 얼굴로 그가 인사를 건네면, 나도 조금은 오 버하여 웃게 된다. 행복도 전염된다던데. 그에게 행복이 전염된 것일까. 그림을 그리는 ‘행복한’ 예술가 픽셀킴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 저는 그림 그리는 작가 픽셀킴입니다. …저는..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나는 지금 그림 그리는 행복한 작가, 픽셀킴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도착! 드로잉 폭발 실험실
픽셀킴의 작업실은 하남에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상가건물. 잘 정렬된 계획도시 사이 공원을 가 로질러가면 만나는 작은 동네에 있다. 잠실창작 스튜디오를 나오게 되면서 작업실이 없어졌다는 것이 그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는 작업만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작업을 마음껏 하지 못 해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의 건강을 해쳤다. 수술을 했고,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그의 조력자인 부모님은 전세 대출까지 얻어 집근처 아파트를 하나 구해 작업실로 만들었 다. 그는 작업실의 이름을 ‘드로잉 폭발 실험실’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24시간을 깨알같이 쪼개어 자신만의 일상을 구축해 갔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작업만’ 했다. 북서울 미술관에서 촬영한 다큐 영상에서 그 첫 번째 작업실, ‘드로잉 폭발 실험실’을 만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드로잉이 폭발하여 방 전체가 그의 드로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벽 한쪽 꼭대 기에 써넣었다. <드로잉 폭발 실험실>. 영상 제목처럼, “길은 너무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 에” 그는 종이라는 그 작은 틀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작업실에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알려진 마커 작업 위주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했 던 것 같다. 첫 번째 작업실이 ‘드로잉 폭발 현장’이었다면, 두 번째 작업실은 여느 작가들의 작 업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전 작업실처럼, 벽면 가득 작업이 걸려 있었지만, 그가 해왔 던 다양한 ‘실험’의 흔적을 목격할 수 있는 현장에 더 가까웠다. 전시에 나갈 준비를 하고 포장 되어 한켠에 쌓여 있고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작업들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마커뿐 아 니라, 다양한 재료들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는 그야말로 실험실의 모습이었다. 이전 작업실이 폭 발의 현장이었다면, 지금의 작업실은 연구와 실험의 현장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작업실을 ‘드로잉 폭발 실험실;이라 부른다.
실험1: 재료실험
그의 작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검은색 마커로 픽셀들의 아웃라인을 그리고 그 안에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색을 하나하나 채워나간 꽤나 수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언뜻 스테인드글라 스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픽셀작업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었다. 세상을 만나는 작은 단 위 픽셀, 작은 픽셀들은 그가 만난 사람과 자연, 순간의 기분들이 담기는 그 만의 조형 단위였던 것이다.
“김현우는 스스로를 픽셀킴으로 부른다.(고 해서)
예명답게 그는 경험과 일상과 삶을 픽셀 단위로 나누고,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의 조형회화로 (만든다).
픽셀 하나하나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감정이 담겼으며
그 도시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작가다.”
– 픽셀킴 씀/ 신보슬 편집
마커는 언제 어디서나 픽셀킴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하고 손쉬운 재료이긴 하지만, 그 의 작업은 마커라는 재료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커는 그가 세상과 만나는 작품을 창작하는 많은 재료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아크릴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내는 우연함을 꽤나 즐기는 편이고, 캔버스를 이리저리 기울이면서 표현방식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일상에서 찾은 오브제들 을 캔버스에 붙이기도 하고, 오려내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재료들은 그의 실험실에서 새로운 창작 도구로 탈바꿈한다. 최근에는 계란이 흔들려서 깨지지 않게 하는 종이로 만든 고정판을 사용한 신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계란이 들어갈 수 있는 동글동글한 구멍 이 규칙적으로 꿇려 있는 그 판이 누군가에게는 재활용 쓰레기 일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또 다 른 픽셀이 되어 세상을 만나는 창이 된다.
알람: 3시 20분의 기도
“알람은 친구지. 친구의 말을 잘 듣는거지”
– 픽셀킴
그의 실험실 곳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알람이 울렸다. 2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아마도 3시 20 분쯤 이지 않았을까? 그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이자 매니저인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아마도 기도 알람일 것이라고 했다. 3시도 아니고, 3시 20분이라는 시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는
말해주지 않았다. 아마도 하나님과 그만의 비밀 약속인가 보다.
픽셀킴은 계획대로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시간별로 할 일을 메모지 에 적어서 실험실에 붙여 두었다. 메모지에 적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하루를 핸드폰 알람으로 가득 채웠다. 뭔가 중요한 회의나 만남을 잊지 않기 위한 알람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 자신을 위한 시간의 알람 설정, 그의 알람은 커피 마시기, 샤워하기, 일어서기 등등의 일상으로 지켜가기 위함이다.
픽셀을 만나고 가는 길에 핸드폰을 꺼내 알람을 설정해 보았다. 5시 기상, 6시 영양제 챙겨 먹 기, 7시 아침 산책, 9시 10분 독서 등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알람이 울리 고, 그것을 지켜가다 보면 그를 좀 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실험2: 글쓰기 실험
– 메모
픽셀킴의 늘 무엇인가 적는다. 그리는 만큼 글을 쓰는 것도 같다. 핸드폰에 빈 노트에. 그의 작 업실 한 켠에는 빼곡한 그의 글을 담고 있는 노트들이 쌓여 있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에는 친 구들이 길에서 나눠주는 학원 홍보용 노트를 모아서 그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고 했다. 확실히 그는 그 누구보다 기록에 집착하는 편인 것 같다. 때로는 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노트가 되기도 하는 그의 글은 픽셀킴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처럼 작용할 때가 많다. 그의 글은 문법도 맞지 않고, 난수표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시간 들여 천천히 읽다 보면, 그 가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보는 세상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거기에서 낯선 즐거움을 찾게 되기 도 한다.
벽면에 그렇게 붙여 놓지 않으면 날아가 사라져버릴 것 같았는지,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고 싶 었는지는 모르겠다. ‘누구나 알 수 없는… 도시의 산책자“, 생명의 프랑스’, ‘픽셀의 모호함’ 작 은 원고지 한 칸 한 칸 채워 넣은 단어와 파편화된 문장들이 언제 어떻게 그의 조형언어로 다시 태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생각과 느낌을 조금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은 단서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 전시 제목
그의 글쓰기 실험은 전시 제목에서 그 빛을 발한다. 직접 제목도 정하고 가끔은 포스터도 직접 만든다고 하는데, 전시 제목들만 가지고도 그의 일상과 작업이 한 줄기로 꿰어지는 듯하다. <나 는 직관적인 노래를 잘 부릅니다>(2021)라는 자기고백적인 소개는 <픽셀로 부르는 이 름>(2019)으로 이어지고 <픽셀의 언어>(2018)를 통해 <픽셀의 기억>(2022)을 이야기하고, <픽 셀의 방법: 믿을 수 없는 공간>(2021), <두드림 금색 달빛 밤>(2015), <픽셀:무한한 공 간>(2021)으로 펼쳐지면서 다짐이라도 하듯 <나의 픽셀은 확장되고 있습니다>(2019)고 말한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펼쳐졌던 그의 전시들은 언뜻 서로 아무 연관 없어 보이지만, 자세 히 보면 알 수 있다.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픽셀킴이라는 작가의 내면에 닿아 있음을.
실험3: 드로잉 실험_수학드로잉
많은 사람들이 그의 픽셀 드로잉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의 수학 드로잉을 좋아한다. 픽셀 드로잉 이 세상을 만나는 조각난 창이었다면, 그의 수학 드로잉은 우주로 확장된 세계 같은 느낌이라 좋다. 세상과 닿으려는 노력보다는 그만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자꾸만 보게 된다. 아주 잠깐 수식을 풀어보려고, 찾아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소용없음을 알아차 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문과생 수포자라서가 아니었다. 이공대 출신 아니라 과학자가 온다 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공식들은 픽셀 드로잉에서 픽셀이 조형 기호로 등장했던 것처럼, 수학기호와 수식 역시 픽셀킴이라는 작가의 기초 조형 단위이다. 그것 은 수식인듯하는 이미지였고, 이미지인듯하는 신들의 모습이었다.
신의 모습. 수학 드로잉의 시작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포르세포네 수학드로잉>, <이아포리스 수학드로잉>이라는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수학 드로잉에는 무수히 많은 신들이 등장 한다. 그중 몇몇은 잘 알려진 신들이지만 포르세포네(꽃과 식물의 신), 에리크토니우스(대지에서 태어나 아테나 여신에 의해 길러졌다고 전해지는 아테네 초기 군주) 등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 수 없는 신들의 이름들도 보인다. <픽셀의 기억> 개인전 서문에서 김신식은 픽셀킴의 수학드로 잉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했던 김현우 작가는 수학 수업을 들으며 신들의 이야기와 수학의 관련성을 도모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하면 누가 누구와 결혼해 누구를 낳았다는 식의 가계도가 떠오르듯, 그는 자 신을 둘러싼 학우와 선생의 이름을 기억한 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로운 직책을 부여하고 이전과 다른 인간관 계를 상상하는 메모 놀이, 드로잉 놀이를 이어갔다. <픽셀의 기억> 속 ‘수학 드로잉’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현우는 수학 공식에 쓰이는 기호, 도형, 숫자 같은 ‘데이터’를 활용해 신들의 친숙한 형상을 해체한다. 그로 인 해우리가신화에서접해온인간과인생의의미를새로이생각해볼지각의공간을마련한다. 곱씹어보면 그리스로마신화의신들은엄청난능력을소유함과별개로인간과다를바없이기쁨과슬픔, 질투와탐욕처럼인간 이 느끼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명망 있는 미술가의 조각상이나 회화를 통해 감정이 실린 신들의표정을확인할수있었다. 그러나김현우의작품에선신들의표정과그감정을살필수있는신체부위의 묘사대신각종수학공식과여러크기의면이자리한다. 특히수학공식은‘우리가알고있는답이란이것이다’ 를 기대하며 전형적인 답을 도출하기 위한 패턴을 익히는 데 쓰이지만, 김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이렇 다’란 전형적인 모습에서 탈피하고자 몇몇 수학 공식을 반복적인 패턴으로 그려나간다.”
(김신식 “다정한 통찰자”에서 발취)
김신식의 말처럼 픽셀킴의 수학 드로잉 속의 신들은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그림의 전면을 메우 고 수식과 기호들을 받쳐주는 바탕색은 은밀한 연관관계를 암시할 뿐 명확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수식과 기호 역시 해석이 불가한 상태이니, 관객은 그림 앞에서 길을 잃는다. 하지만, 길을 잃는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즐겁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SF 영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숫자로 표시된 디지털의 무한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수학의 기호 앞에서, 답이 없는 수학공식 앞에서 이렇게 즐거워도 될까 싶 게, 수학 드로잉은 즐겁게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학 드로잉의 시작은 분명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였지만, 최근 그의 수학 드로잉은 다양한 내용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캐나다 밴프에 갔던 인상을 담는다든지(<밴프 춤 수학 드로잉>),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우크라이나 픽셀 수학 드로잉). 최근 에는 영상 미디어 작업을 하면서 블랙에 매료되기 시작했다는데, 그 때문인지 <블랙 공간 수학 드로잉>, <블랙 자연 수학 드로잉> 같이 ‘블랙’이 전면에 등장하는 수학 드로잉 작업을 많이 하 고 있다.
픽셀 드로잉이 작가로서의 그가 현실에서의 길을 찾아가고 경험하는 것들을 담아 가는 것이었다 면, 수학 드로잉을 통해서 세상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로서 그의 내면이 가지 고 있는 무한한 창작력과 확장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일까. 그에게 명확한 정답을 듣기는 어렵겠 지만, 정답 없는 그 모호함, 상상의 여지가 예술작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의 순 간은 아닐런지.
에필로그: 픽셀적인 글쓰기
그는 내가 아는 작가 중 제일 바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패션회사와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를 하기도 하고, 병원에 가서 환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그는 또 내가 아는 작가 중 가장 성실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시간 단위로 울리는 알람에도 짜증 내지 않고 성실히 하루하루 꾸려나간다. 그는 또 내가 아는 작가 중 제일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있는 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안에서 즐겁게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작가이다. 그는 또 내가 아는 작가 중 하루하루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작가 이다. 모닝커피 마시기, 산책하기, 일어서기 등 소소한 일상의 귀함을 아는 작가이다.
하지만 그와 내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아주 제한적이어서, 어쩌면 나는 내 마음대로 그의 그림 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생각을 그의 말로 온전히 들을 수 없기에 그래서 더욱 나는 즐겁게 그의 그림을 꼼꼼히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의 작업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작가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작업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무척 조심스럽다. 작가에게 확인받을 길이 없는 글은 나의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이야기를 펼쳐갈 확률도 크다. 결국, 내가 본 그의 모습을 파편적으로 나마 적다 보면 그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어지는 픽셀들이 길을 만들고 형상을 만들듯 그렇게 파편으로 이루어진 이 글 이 누군가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작은 가이드라도 된다면 좋겠다.
드로잉 폭발 실험실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그의 조력자인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픽 셀킴은 자신의 일정에 따라 작업을 진행했다. 그동안 한두 번의 알람이 울렸다. 작업실을 나오는 데 그의 실험실 벽에는 그가 쓴 시 <살아간다>가 자꾸 마음에 달라붙었다. 문법도 틀리고, 알듯 모를듯한 시였지만, 말로는 다하지 못했던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결연함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와 나의 살아감에 응원하며, 실험실을 나왔다.
살아간다
모두 다함으로써 살아가보자
흔들지말고 살아가보자
나무와 집 나와 같은 꽃을 피어보자
나는 같은 바보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데 쏟구치는 힘을 모아보자
힘내라
힘을 모으자 살아간다
여행에 간다
영국에 가면 전시를 하면서 목적이다.
세번째 개인전에는 영국에 가면서
전시를 하면서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 픽셀킴 씀/ 신보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