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 Young Wook
CHOI Young Wook
October 02 – 21, 2024
Opening October 02, 2024 Wed. – 16 pm.
Gallery RHO
기대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다독이는 최영욱의 <카르마>
임창섭 미술평론
최영욱은 달항아리를 소재로 그림을 그려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하지만 달항아리는 단지 소재일 뿐, 그는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구분해 내는 특출한 감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대할 것 없는 세상, 저절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느슨한 지식이 아니라, 끝없는 믿음과 노력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든다는 진실을 보여주려 한다. 결국 그의 그림 ‘카르마’(Karma, 업보 혹은 인과관계)는 그 뜻처럼 그렇게 되리라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1. 홍익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불현듯, 캔버스 몇십 장 사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림에만 열중했다. (‘불현듯’이라 했지만, 그를 그렇게 할 수밖에 만든 것이 카르마이다.) 그의 유명세는 이미 알려져 있듯이 빌 게이츠 재단이 2011년에 달항아리를 그린 그의 작품을 소장한 이후부터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단순히 소재일 뿐인 달항아리라는 이름에 이끌려, 정작 그의 그림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먼저 작가의 진술에 의하면,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도 작가로서 길을 고민하던 2000년대 초반에 지인과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 우리 도자기도 좋은 소재인데 그리는 작가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마침 여러 소재를 궁리하면서 항아리와 대접을 그리고 있던 터에, 이 말이 그의 귀에 콕 박혀 무작정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무작정이라 말하지만, 여러 유명 작가가 달항아리를 그렸고 많은 예찬을 들어왔기에 그의 손이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때는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리기도 하고 현재와 비슷한 형식의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이런저런 형식으로 달항아리를 150호가 넘는 캔버스에 그려 전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최영욱은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 미술관에 전시된 달항아리를 보고 난 뒤부터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여러 형식으로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은 그냥 그렇게 어떤 의도도 방향도 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불현듯, 절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하물며 우리가 겪는 아주 미미한 일도 그렇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관에 전시된 달항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눈으로 품격을 따지면 한참 모자라는 그것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감동이 밀려와 자리를 떠나지 못해 한동안 자리에 머물렀다. 그 뒤로부터 그때까지 달항아리를 그리던 방법과 그림을 그리는 태도와 이유를 치열하게 바꿨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빌 게이츠 재단이 소장하게 되었고, 재단 건물완공식에도 초대받아 빌 게이츠도 만났다. 이것이 최영욱 작가에게는 최고의 ‘카르마’였다.
2024년 올해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바뀌었듯이 학계에서 공식으로 불렀던 ‘백자대호’(白磁大壺)에서 ‘백자달항아리’로 바꾸어 부르며 사랑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사카와 타구미(浅川巧)의 ‘조선의 소반’(1929)과 ‘조선도자명고’(1931)가 아니었으면 사라졌을 부엌과 밥상 위 그릇에는 달항아리라는 이름은 없었다.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우현(又玄) 고유섭 선생이 커다란 둥근 항아리에 이름을 붙였다.(혜곡 최순우라는 주장도 있다.) 달항아리를 예찬하는 글과 그림을 여러 문학가와 미술가들이 발표하면서 신화는 시작되었다. 외국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유명 경매장에서도 인기가 높아 신화는 나라 안팎으로 쌓였고, 우리 도자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최영욱 작가의 <카르마>는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내거나 혹은 달항아리가 가진 신화를 재창조하려는 그림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달항아리를 보고 난 뒤부터 그리기 시작했다고 오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그가 달항아리를 그리며 의도하고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전혀 다르게 말이다.
도자기 제작이 국가산업이었던 조선은 1481년에 반포한 ‘경국대전’에 공장과 직인 숫자까지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각 공장에서 생산된 자기 품질을 등급에 따라 나눴는데, 상중하(上中下)로 나누고 다시 이를 세 등급 ‘상상’, ‘상중’, ‘상하’ 이렇게 9등급으로 구분해 엄격하게 품질을 관리했다. 즉 백자 품질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색이었고, 푸근하고 친근한 함박눈이 가진 흰색을 닮은 백자를 최고 등급으로 하는 깊고 예리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색에 관한 깊은 인식과 이해가 우리에게 면면히 이어져, 우리는 특출한 시(視)감각을 보유한 민족이다. 하지만 대개 이런 능력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색을 구분해 내고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느끼는 수준 높은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초봄 아직 물이 오르지 않아 마른 산과 들에 가장 먼저 피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보며 우리 정서를 대표하는 꽃이라고 하는 이유는 색을 알기 때문이다. 생명력 없어 보이는 곳에 생생한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가진 색이 추운 겨울을 견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생동감을 주는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한국의 정서를 대표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 말고도 보기로 들만한 것들은 많다.
그러니까 최영욱의 <카르마(Karma)>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은 달항아리가 가진 색과 형태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깊은 심미안 중 하나인 색을 구분하고, 그것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구분해 내는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간판이 드러내는 이미지와 교통표지판이 가진 경고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관한 진지한 탐구 결과로 그려진 그림이 최영욱의 작품 <카르마>이다.
2. 세상이 절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무심하게 보면 그럴 것 같지만 철저하게 예정되고 계획된 대로 움직이는 것이 이 세상이고 자연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기대할 것 없는 세상이다. 비약하면, 과학자나 여러 언론매체에서는 자연의 이변이라고 하고, 기후 위기라고 하면서 경각심을 부추기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지구가 멸망의 길로 들어가지 않기 위한 모종의 계획된 일인지도 모른다. 온 세상은 정밀하게 짜인 계획대로 움직이는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최영욱 그림도 달항아리 표면에 난 빙렬(氷裂)을 그리는 행위를 달항아리 모습 그대로 옮기는 시도라고 겉핥기로 해석하지만, 정작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최영욱 작품은 달항아리를 그대로 옮기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다. ‘카르마’를 대신하는 기호로 원인과 결과가 만든 업에 따라 순행하는 자연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빙렬은 자연과학적(natural scientific)으로 말하면, 두 물질이 가진 수축률이 서로 달라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자기는 흙이 몸체를 이루고 여기에 유약을 바른, 즉 흙과 유리라는 두 가지 물질이 결합하여 성형된 것이다. 초벌하고 유약을 발라 가마에 구워서 자기질로 변화된 이후에 도자기가 식으면서 흙이 수축하는 표면적과 맞추기 위해 유약 즉 유리가 갈라지며 표면적을 넓히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실금이 생긴다. 이것이 빙렬이다.
그러니까 빙렬 그 자체는 열이 식으면서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다.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을 미적으로 이용한 시도가 있었고 특히 중국 도자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어쨌든 빙렬은 이런 것이지만, 최영욱은 자신 작품에서 빙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재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내가 그린 카르마(Karma)는 선에 그 의미가 담겨있다. 그 선은 도자기의 빙렬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이다. 갈라지면서 이어지듯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로 아우러진다.”라고 진술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생각하면, 세상이 아니 자연이 움직이던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우리는 무(無)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자연(自然)을 느슨하게 글자대로 해석하여 잘못 이해하면서, 그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일 뿐이라고 오해한다. 얼마나 자주 우리가 ‘자연스럽게’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지 뒤돌아보면 알 수 있다. ‘자연’(nature)과 ‘자연’(自然)은 나 이외 외부 세계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관점 차이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어 nature는 라틴어 natura가 어원이고 이는 natus에서 온 단어로 ‘만들어지다’ 혹은 ‘태어나라’라는 뜻을 가진 동사 nascore의 과거분사이다. 따라서 영어의 nature 의미에는 ‘만들어진 것’이라는 즉,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기독교에 계승되고 플라톤 이후 그리스 철학과 만나 서양의 자연관을 성립시켰다. 자연을 신의 피조물로 보면서 한편으로는 과학의 발달과 계몽사상의 확대로 인해 자연을 이성의 하위 개념으로 놓게 된 결과를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세상의 구성원리를 궁극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합리적 이성이고, 그 대상이 자연이라는 철학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을 도전과 탐구의 대상으로 여겨 수학과 과학으로 그 작용이 측정되고 검증되는 물체 이상 아니라는 사상이 확장되었다. 이런 사상의 확장으로 지속적인 지리적 확대와 탐구 그리고 산업발달을 초래한 양상이 서양 근대역사이다. 따라서 개략적으로 말하면 서양의 자연관은 목적론적 개념에서 기계론적 개념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움직임은 자연물 자체에 내재한 힘의 자기 외화, 자기 발현으로 이해하고 이는 자연 스스로가 움직여 이룩하고자 하는 목적을 내재하고 있으므로,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 목적론적 개념이다. 한편으로는 자연이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단지 자연이 지닌 획일적 관성의 법칙에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자연은 개발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계론적 개념이다.
동양의 자연관에서 자연은 서양의 자연관처럼 경험과 인식의 대상으로서 구체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정신 즉 우주의 본체와 근원적 원리로서 자연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동양의 자연관은 도교, 불교, 유교의 전통적 사상과 밀접하게 관련 맺으며 우리의 정신세계 토대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동양의 자연관이 갖는 특징은 인식주체로서 자아와 인식대상인 자연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창조자로서 신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저 거기에 있는 것으로 인간과 완전히 독립되고 분리된 객체가 아니다. 인간이 작은 자연이라면 외계의 자연은 확대된 자연으로 인식한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이 이들보다 우월하거나 상위에 있다는 의식 또한 불가능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외계에 있는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위계에 있는 존재라고 파악한 것이다. 이를 따르면, 동양의 자연관은 자연을 살아있는 생물체로 보는 유기론적 자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있는 생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인다. 이를 생명론적 자연관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동양에서는 살아있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하늘은 도덕의 근원이며 인간은 천지의 덕인 존재이므로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지 않은 일원적 세계관을 지니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기일원론(氣一元論)과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
이런 사상은 노자의 <도덕경> 제25장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는 느슨한 지식과 나태한 실천력 때문에 노장사상의 대표적인 사상에 하나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잘못 이해한다.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라는 사전에 쓰인 글자대로 읽는다. ‘자연스럽다’라는 말처럼 그렇게 저절로 되는 것이라는 오해를 쌓고 있다. 결론을 말하면 무위(無爲)란 ‘행위 없는 행위’로, 앞의 행위인 인위(人爲)로 이를 넘어서는 노력이 따라야 뒤 행위를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위라는 뜻이다. 행동이 자신의 노력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는 행위에 빠질 때 비로소 무위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무위에 가까운 행위의 흔적이 최영욱의 <카르마>에서 보이는 빙렬의 기록들이다.
최영욱의 빙렬은 카르마의 상징기호이고 의식을 넘어선 미적 행위이다. 자신의 행위를 넘어선 행위를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 최영욱의 작품 <카르마>이다. 동양적인 세계관을 닮아 온 세상이 연결되어 서로 유기론적 혹은 생명론적 상징으로써 달항아리에 빼곡히 들어있는 상징기호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최영욱의 <카르마>를 들여다보는 감상자는 우리의 무수한 업보가 자신의 심상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디서 어떤 업보를 쌓았는지 모두 잊었어도 그 행위의 흔적은 세상에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최영욱의 작품이다. 아마 그래서 최영욱의 작품이 사랑받는지 모르겠다. 비록 감상자가 온전히 카르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3. 지금까지 작가 최영욱과 그의 작품 <카르마>를 올바르게, 어떤 주장을 해야 올바른지 몰라도 적어도 최영욱은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작가는 아니다, 이해하려는 쪽으로 기술했다. 그 하나는 우리의 특출한 색 인지 능력에 관한 미적인 감각 또 하나는 과거 행위의 흔적이 현재를 구성하고, 지금의 행위가 미래 세계를 구성하는 카르마를 해석했다.
균형추를 평행하게 만들려면 우리를 뺀 ‘대중’은 어떻게 보는지 혹은 보아야 하는지도 언급해야 하지만 이를 온전히 밝히기는 험난한 일이다. 그래서 현대 대중사회에서 보이는 특성 중에 하나를 예로 들어 억지로 균형을 맞추려 한다. 산업이 발전되고 사람이 모이자 도시가 생기고 확대된다. 여기서 대중 혹은 대중사회가 등장하고 영향력은 점점 확대되었다. 물론 이외에도 대중이 형성된 정치적, 문화적 원인은 많다. 어쨌든 지금 우리 대다수를 대중이라는 범주에 매겨도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은 사회를 구성하는 한 계층이라기보다는 어디에나 속해있는 개인이자 집단이다.
사르트르가 대중을 자신의 이름이 사라진 익명성 때문에 ‘소외된 인간’ 혹은 ‘고립된 인간’으로 표현했으나, 현재는 오히려 이런 익명성 때문에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중의 행동과 영향 혹은 병폐를 이미 1920년대에 스페인 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는 <대중의 반역>에서 예견했다. 그는 대중은 문명을 깊이 고찰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갑자기 태풍이 불어 도심 대단위 상가에 정전이 되거나, 전기밧데리 공장에 대형화재가 나면 화를 폭발시키는 대중이 있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던 것들은 많은 체계와 노력으로 탄생하고 유지되어 온 것이라는 성찰하지 않고 당장 겪게되는 불편함에 분노를 분출시킨다. 도시가 유지되는 작동 원리와 그동안의 노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찰없는 화를 내며 위기를 조성하는 이들이 대중이라는 것이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이런 사태를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은 응석받이가 되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불만을 해결해주기만 바라는 떼쓰는 응석받이 말이다. 이런 변덕스럽고 응석받이로 가득한 대중사회는 위험천만하다.
그러나 대중 속에 적은 숫자지만 몇몇은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고 원리를 깨우치려 스스로 노력한다. 자신과 주변을 제어하는 힘을 배양하고 있다. 이들을 부르는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이들이 있기에 우리사회는 유지되고 있다. 이들은 자연과 과학, 사회와 경제의 원리를 탐구하고, 인문학과 종교를 배운다. 교조주의‧독단주의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이들에게 철학과 학문 그리고 우리가 다양한 예술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예술이 모두 그럴 필요도 그럴 수도 없지만, 적은 수는 스스로 회고하고 반추하고 또 반성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그것의 형태가 무엇이든 말이다. 어쩌면 종교가 하는 역할을 예술이 하고 그것을 알아보는 대중을 바라면서 하는 말이다.
최영욱의 카르마가 소수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평정을 유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난해할 정도로 복잡한 한순간의 고요도 허락하지 않는 도시 속에서 최영욱이 달항아리를 그린 <카르마>는 좋은 명상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