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Suk Ju
Lee, Suk Ju
사실을 사실로 보다
한 개인의 삶이 많은 변화가 있듯이 작가의 작품세계도 나이와 경험, 환경 특히 세상이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변모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일관된 주제와 소재로 평생의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 개인전마다 이전과는 다른 주제와 소재를 선택하는 편인데 이것은 의식적인 의도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chapter들이 모여 한권의 책을 완성하는 것처럼 내가 추구하는 큰 흐름속의 다양한 모습이라 생각되며 현재의 작품을 이해하기위해서 그동안의 작업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70년대 말부터 암담한 현실을 상징한 ‘벽’시리즈 이후에, 1980년대의 ‘일상’시리즈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적 삶에서의 무자각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허무감 속에서 우리가 다른 존재와 맺는 관계는 인식 관계가 아니라 존재 관계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현실과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존재의미를 찾고자하였다. 그래서 작품에서도 아웃사이더의 눈에 비친 도시 풍경과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을 통하여 일상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과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보여 주고 있다.
그 후 ‘서정적 풍경’은 긴장된 현실에만 국한되었던 의식의 밑바닥에 감추어진 서정성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자아의 내면풍경을 표현한 작품들인데 기차, 의자, 시계 등의 인공물과 말, 꽃, 들판과 하늘 등 자연물의 여러 오브제를 결합하여 초현실적인 화면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소재들이 보여주는 외부적 서정성보다는 데페이즈망(환치)을 통한 낯선 만남 혹은 대비 관계로 새로운 이미지가 연출되어 꿈과 현실, 상상과 실재의 관계를 넘나드는 내면풍경을 보여주는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에 근거하여 현실 너머의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책’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는 과거 여러 이미지의 결합을 통한 데페이즈망의 초현실성과 스토리 연출보다는 책이라는 소재의 대상자체의 사실성에 집중하였는데, 대상의 존재적 근원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사실을 단순히 사실 자체로만 보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개인적 시각에서 극사실로 표현된 현실적인 책은 존재성 자체를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19C 외향적 현실의 사실에 집착한 쿠르베의 리얼리즘이나 개인의 주관적 관점과 감정을 차단하여 도시적 풍경과 일상을 그려낸 차가운 이미지의 하이퍼리얼리즘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다.
사물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는 집중을 통한 응시, 즉 주시(注視)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일반적으로 대상에 집중하면 대상만 보이고 대상을 보는 주체에만 집중하면 그 대상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시의 역할은 대상과 대상을 보는 자의 관계를 전체적인 객관적 사실로 동시에 인식하여 그 관계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로 대상과 주체의 균형을 유지했을 때 존재의 중심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나의 작업에 있어서도 주시를 바탕으로 하여 대상과 보는 자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유지하고 대상의 실체가 캔버스에 존재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표현하기위해서 사물을 극대화하여 그 단순성과 개별성을 강조하였는데, 시각적으로 확대되고 극사실로 표현된 사물은 그 자체의 존재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책이라는 소재는 많은 작가들이 애호하며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나에게 있어 책이라는 소재는 대상을 통한 자기인식의 극명한 존재감을 상징하며 사실을 보고 사실을 표현하려는 대상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캔버스에 표현된 책의 존재를 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과연 실존적 존재(Existential Being) 인가?’
이 석주
소설가 못지않은 다양한 테마를 그림 속에 불러 세우는 황주리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관찰자의 많은 눈을 가진 작가이다. 그녀의 독특한 발상은 4차원적인 열린 상상력의 덕분이 틀림없다.
김종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