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aki Maruyama
Masa’aki Maruyama
침묵의 형 – ‘마루야마 마사아키’씨에게 보내는 편지
사카이 타다야스(미술 평론가)
선생님의 작품에 대하여 생각하면,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날의 일들이 떠오릅니다. 나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지금까지 뚜렷하게 생각이 납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것은, 인상의 발단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작가와의 만남이라든가, 친숙한 감정을 느낀다거나, 그 느끼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나는 체험해 왔습니다.
조각가 ‘브랑쿠지’는, 자신의 출생지인 ‘트루크쥬’(루마니아)를 찾지 않는 것으로 동경의 대상을 멀리했지만, ‘헨리 무어’와 ‘바바라 헤파스’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출생지와 연고지를 철저하게 융합시켜 자신들의 창조적 계기의 일부분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선생님의 고향인 ‘신슈'(信州-長野縣 諷科町)였습니다. 교외에 있는 작업실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보는 순간, 왠지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 것과 같은 아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곳에서 작품을 보는 것이 결코 드문 일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가로운 분위기 속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선생님의 작품-조각의 성격-에 몰입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지 하나의 직사각형 브론즈 덩어리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듯한 작품을 보았습니다.
저는 손으로 만져가면서 그 감촉을 확인하였습니다. 위로 쌓아올린 것, 또는 형태가 다른 직사각형을 2개 혹은 3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작품이 있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각기 다른 직사각형의 브론즈가 붙어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희미하게 그어진 선은 원래 형태를 암시하고 있어, 감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삭제하고, 그러면서도 작가의 손이 직사각형 브론즈의 표면과 모서리 부분을 가볍게 문지른 듯한 부드러움을 만들어, 도자기의 촉감이나 세월을 먹은 검은빛이 도는 가구의 감촉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한순간에 추상으로 향하지 않은 것이 좋았습니다. 그 점을 수치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받았던 개인전 팜플렛으로 선생님의 80년대 후반 작업을 추측해볼 때, 인체 형태에 친숙했던 경험이 녹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부드러운 감촉이라는 것은 한편, 자연발생적으로 무의식 행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조각가의 경우에는 좀더 의식적인 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회로를 미묘한 형태로 만드는 것은, 선생님의 연구가 실제로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과학적인 해석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가지 과학적인 형태로 접혀진 작은 종이배를 배를 펼치면, 한 장의 평평한 종이로 되돌아가지만, 자신은 꽃봉오리가 펼쳐지면 꽃이 되는 것처럼, 그러한 ‘전개’(展開) 방법을 기대한다‘라고 말한 사람은 독일 사상가 ‘발터 벤야민’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벤야민의 말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선생님의 조각에 공감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인간됨 일부가 그런 형태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수채화처럼 아름답지 않을지 몰라도, 단지 거기에 있는 결국, 돌과 같은 덩어리가 암시하는 하나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아름다움이라고 하기보다는 침묵-내지는 침묵의 형-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이런 표현과 연관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각가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결합시킬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질문에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답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저는 비평가의 나쁜 버릇이 또 다시 튀어나왔음을 느끼고, 그 의문을 지워버렸습니다. 조각가의 창작에 파고들어 하나하나 캐묻는 경우도 가끔은 있으나, 선생님의 작업실에서는 왠지 모르게 몽롱한 기분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왔다 갔다 하면서 작품을 본 것은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작업실을 처음 찾은 것은 2002년 5월 하순이었습니다. 으스스한 찬바람의 추위를 느끼게 하는 계절이었습니다. 산들도 엷은 녹색의 옷을 갈아입고, 자연변화의 순환 앞에 설 수 있었던 산뜻한 계절이었습니다. 때마침 저의 친구인 I씨의 미술관이 ‘호다카'(穗高)에서 개관해서, 그 개관기념식에 참가했던 날 밤 호텔에서 선생님의 부인으로부터의 한 통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 처음 만남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점심이 지날 때까지 선생님의 댁에서 폐를 끼치게 되었으나,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조각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아주 긴 시간을 보냈다고 기억되지만, 결코 지루한 이론에 빠지지 않았고, 일본어와 독일어, 영어 그리고 때론 이탈리아어가 섞이기도 하는 조금은 떠들썩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경이 쓰였던 것은, 선생님이 잠시 제작을 중단하고 공허 속에서 생기는 한 일종의 그림자 같은 것에 이끌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중단이라고 하는 것은, 종종 새로운 출발을 위한 휴식이기에 불필요한 걱정이었을지 모르지만, 말하자면 조각과 같은 구체적인 물체와 매일 만나고 있으면, 때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세계에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빠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허라고 말한 것은 텅 빈 세계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쟈코메디’도 초현실주의 조각을 버리고 한없이 가느다란 조각을 하게 된 것은 결국 공허한 세계의 허함 속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걱정했던 선생님의 그림자 영역에 대한 대화도, 창조를 위한 계기 때문에 일부러 제작의 손을 쉬게 한 것으로, 그것은 저의 쓸데없는 걱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말테의 수기』의 시인이 ‘로댕’의 공방으로부터 탄생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뛰어난 감성을 지닌 주인공이 자신의 영혼에 스스로 조각하는 창조를 위한 고통처럼, 그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출산의 고통과 같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시인은 세계의 변화를 마음속에 새기고, 소재가 되는 언어를 사용했지만, 조각가처럼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마음속에 있는 침묵의 형을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샤를슈미트 리히터’는「오랜 해외생활에도 불구하고, 모국의 문화에 깊게 뿌리를 둔 예술가는 있다」라고, 선생님이 자신의 뿌리를 끊지 않고 있음을 선생님개인전 서문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허함으로부터’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뿌리와 결부된 것과 같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가란 외부의 현실과 싸우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현실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서양적인 것으로부터 일본적인 분위기를 지닌 것으로, 결국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심상의 변화를 느꼈습니다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각은 공간과 결부되어 미래를 지향한다고 한다면, 선생님의 어느 곳에서 이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인생에 대한 사유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의식-기억-과 결부되므로, 때때로 일을 중단하고, 그것에 상응하는 사색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처음 만남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선생님의 작품이 저를 붙잡았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저의 인상의 내재적 이유를 말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지만, 저의 취미에 맞는 조각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작품이 어떤 공간에 있어야만 할 것인가를 가상하여 생각하였고, 선생님의 조각이 지니고 있는 원심성을 예측하여, 다양한 외재적인 세계와의 관련을 가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선생님의 조각답고, 그것 자체가 우주를 담아서 공연히 외부로 향해 확대하려는 것을 저지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상응해서 조각의 크기에 있어서도, 선생님의 조각이 매력을 발휘하는 것은, 선생님의 성격을 계량하고 물질로 만들어 낸 탓일 것입니다. 조용히 내면을 보여주려고 하는 실험정신에 충만한 선생님 조각의 몸짓에 감명을 느꼈다 라고 마지막으로 말해두고 싶습니다.
이번 개인전의 성공을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