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Kyeong-Gu
Kang, Kyeong-Gu
박영택/성대•추계대강사
강경구의 최근작은 보다 유연하고 여유로운 몸놀림, 그런 포즈를 보여준다.
가볍게 흐르면서 기에 충만한 모필사생을 비롯해 단순하지만 명확성에 겨냥된, 흑과 백의 절제된 구성의 힘을 머금은 이번 작업들은 그림을 보다 수월하게 풀어나가면서 필묵의 본성 및 간결한 형태와 느낌을 동반한 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쪽으로 조율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그는 최근 판화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종전에는 산이나 서울풍경을 다소 힘차고 무겁게 담아내려 했다면 이번에는 산과 집, 동네풍경, 귀가길 정경 등 그 소소하고 비근한 일상의 모습을 담담하게 나아가 정겹고 친근하고 은은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일견 삽화나 가벼운 스케치 풍의 그림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구수한 해학과 정겨운 정취를 농밀하게 담아내면서 자신의 체험에 철저하게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우선적으로 다가온다. 종전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주변의 풍경과 정경을 체험적으로 묘사하면서 한층 가슴 밑까지 우리네 삶의 흔적, 정서 등을 끌어 올리려는 시도로 읽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가 미술행위의 본성에 대한 자기검증과 확인아래 이루어지는, 자신의 삶의 구체적인 감성에 기반한 미술행위의 적극적인 구현에 대한 방법론적 모색과 맞물려 있다고 보여진다.
자신의 삶의 체험에서 자연스럽게 시각언어의 구체성을 획득해 나가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공감대, 소통의 적극적 측면을 찾아나가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에 따라 일상풍경, 삶의 공간. 자연 정경 등을 자신의 눈으로 착실하게 그려나가면서 그림을 관념이나 시대적 조류 속에서 가늠하려는 종전의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일련의 시도와 만나게 된다.
강경구는 몇해전부터 서울이라는 도서공간을 그려오고 있다.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북한, 낙산, 인왕, 관악, 도봉, 수락산 등을 특유의 힘차고 두텁게 중첩된 붓질과 강하고둔중한 힘으로 차오르는 구성및 겹쳐지면서 밀고 올라오는 색채의 궤적으로 담아왔는데 산 뿐만 아니라 한강, 밀집된 아파트 그리고 구체적인 서울의 동네풍경등도 그려왔다.
하비콕스(Harver Cox)의 지적처럼 오늘날 우리들 삶의 유일한 토대인 이 도시의 본질은 직명성, 이동성, 그리고 불안의 근원’에 다름아니다. 현대의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막연한적대감, 외부지향적, 경계와 질투,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사고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이며 모든 현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들어진 모든 것은 파괴된다는 철저한 기계주의로 규정된다. 그같은 공간속에서 살아가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화가들에게 그런 삶의 환경과 경험, 고통들로부터 회피할 수 없다는 모종의 위기감을 던져줄 수밖에 없을것이고 과연그 문제들을 어떻게 형상화하면서 미술행위의 근원을 생각해 볼 것 인가하는 사고를 자연스레 부추켜 준다.
특히나 동양화로 도시의 감수성과 미의식을, 삶의 공간을 포착한다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닐텐데 강경구는 그 시도를 주어진 도시공간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면서 풀어 보이고 있다.
지난 시기 산수나 실경에서 벗어나 지금 바로 이 도시공간을 철저한 사생에 입각해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동양화가 지닌 특질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우리미술의 전통을 찾아나서는 시도를 병행하고 있다. 강경구는 확대된 시각으로 오늘의 삶의 공간을 체득해내고 이를 통해 한 시대의 삶의 경험에 충실 하고자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그 시대가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는 고통의 경험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보편성을 놓친 추상화된 경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위험을 벗어나는 길은 작가의 경험권으로부터 확보된 구체성과 특수성의 힘을 통해서이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최근작은 종전의 풍경에서 한층 삶의 공간으로 내려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우리네 삶의 이모저모에 마음을 건네고 있음이 눈에 띤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들은 무채색 일변도로 이루어졌고 건필의 필력이 두드러져 보이며 운필과 기의 표출을 독특한 구도감각으로 압축시켜 놓았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 작업에서 엿보이는 무한한 색상의 파노라마 대신에 흑과 백색으로 소박하고 단촐하게 그려지고 있는데 이런 시도는 최근 주목되는 현상으로 그간 범람하는 색채와 표현의 누출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는 우리의 보편적 정서에 보다 부합되는 일련의 복고적 뉘앙스를 드러내는 듯도 하고 수묵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확장으로도 보인다. 아울러 외양으로 드러난 묘사나 꾸며짐보다는 끈끈하게 밀고 올라오는 삶의 체험, 정서, 느낌, 세상살이의 깨달음 같은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위치시키려다 보니까 군더더기가 제거된, 어눌하지만 본질적으로 뼈대만 남기려는 완숙한 힘과 기량에 의해 날카롭게 풀려 나오는 의도적인 소박과 직관의 힘에 방점이 놓여져 있다고 여겨지는데 실상 그 같은 경지는 포즈나 시늉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경지인지라 작가는 삶의 인식과 사상의 깊이에 부심하는 흔적을 이렇게 저렇게 마음의 행로를 따라 보여 주고자 한다. 아마도 그런 경지는 삶의 정점에서 이룩되기에 그 길이 어렵고 힘들고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리라는 생각도 들고 그것이 바로 예술이고 그림 그리기이고 좋고 착한 삶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실상 동양예술의 궁극의 목표란 德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덕이란 너그럽고 크고 넓게 생명을 존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이번 전시에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늦으막한 저녁시간 가로등불빛을 발아래 끌며 귀가하는 시민의 표정과 육체는 흐린 달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침묵 속에 생명의 긴 호흡을 내쉬는 용마산 풍경과 겹쳐지면서 뇌리에 긴긴 자욱을 남겨 주었는데 그 자욱들이 이 작가가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