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식
생의 기원, 축제 그리고 새로운 깃발을 내릴 때 까지
김종근ㅣ 미술평론가
이두식의 화가로서의 출발은 60년대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열기와 함께한다. 그러나 畵題적으로 볼 때 서구 회화의 인식에 빠지기 쉬운 즈음에 전통적인 세계인 ꡒ만다라ꡓ 또는 ꡒ단청의 색상을 연상시키는 祭시리즈ꡓ등 무속적인 세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회화세계를 통시적으로 볼 때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때 이두식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 작품들은 대부분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을 한 후 수채화로 작업을 완결하는 형식으로 당시 분위기로서는 이채로운 작업으로 불려졌다. 그 기법은 드로잉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감각적으로 에스키스의 속성들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데 있다. 이름하여 ꡐ생의 기원ꡑ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들은 먼저 불명확한 외형의 이미지들을 중심에 놓고 그 가운데 씨앗 같은 식물적 대상들을 정밀하게 묘사해 놓는 고도의 장치와 기법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의 그의 작품들은 보다 강렬하고 폭발적인 인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생의 기원에 중심적인 기법이 드로잉과 수채화에 의존한 극사실 묘사에서 강력하고 폭발적인 색채가 화면 속에 뛰어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손이 주무기인 시대로 화단에서도 가볍게 치부하거나 인식해왔던 드로잉의 아름다움을 띄우는데 기여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의 공로이다. 이후 연필 드로잉과 수채로 대표되는 그의 화풍은 커다란 전환을 맞아ꡐ도시의 축제ꡑ시리즈로 변신을 한다. 이 시리즈는 대부분 캔버스 작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만 사실적으로 처리되던 극사실의 정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다이나믹하며 거칠은 자유분방한 필선과 격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색채의 구사가 화면을 압도하고 있다. 오광수는 이것을 ꡒ생명에 넘치는 내면의 에너지 구현ꡓ 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세계는 대단히 앵포르멜적인 요소와 사실적인 요소가 간헐적으로 ꡐ生의 起源ꡑ에서 보이는 여체에 대한 묘사가 기묘하게 자리한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나비, 물고기, 잠자리, 계단 등의 이미지가 색채와 조형성과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양식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마치 추상과 구상과의 만남, 자연의 이미지의 새로운 조형화로 이해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의 이런 기술적 화면구성 속에는 색채들이 빚어내는 음악성 넘치는 붓질과 함께 이두식 회화의 독창적인 조형성과 마크 형성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특별히 그의 회화에서 보이는 드로잉적 붓터치와 속성들은 종이 작업은 물론 캔버스 작업의 전편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영향력 있게 나타난다. 때로는 동양화의 농담의 극치를 보는듯한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기법으로 열정과 관능이 뒤엉켜 빚어내는 오케스트라 같은 감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또한 우리는 그의 회화에 중요한 특징으로 보여 지는 색채의 의미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색채회화라고 할 만큼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이미 그러한 그의 회화적 색채의 인식은 1972년 ꡐ巫祭ꡑ라고 붙여진 작품에서 그 원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특성은 적 청 황 흑 백색을 기조로 전통적인 오방색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두식의 화면에서 오방색은 이미 평론가 윤진섭이 그의 작가론에서 명료하게 집어내듯이 단청이나 불화, 무속도 그리고 민예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의 색채이다. 그는 이러한 창의를 기조로 한 정도로 풍부한 색채의 사용과 즉흥적이며 비정형적인 구성으로 그 회화의 장을 펼치고 있다. 물론 색채의 사용과 그러한 기법에는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취했던 패턴과 초기의 앵포르멜적인 제스처, 생의 기원에서 보이는 아주 정숙한 톤 그리고 도시의 축제로 이어지는 격정적인 색채와 조형적인 하모니가 그의 회화적인 발걸음에 큰 대조를 보이면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이제 이두식의 최근 회화는 많은 평자들이 분류했던 화려했던 이두식의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3시기를 지나 제4시기의 원숙미 넘치는 계절로 들어서 있다. 그러한 징후를 우리는 최근 작업하고 있는ꡐ무제‘(?)로 지칭되는 페스티발 연작에서 명확하게 발견한다. 특히 원색적이며 자유분방하게 풀어헤치던 색채의 향연에서 그는 보다 절제된 색채를 동경하며, 거침없는 형태의 열정에서 이성적으로 통제된 새로운 도상학을 찾아내고 있다. 거기에는 그린다는 것과 서체적인 드로잉의 개념에 기대인 붓질, 샘프란시스처럼 던져진 색채의 혼합과 하모니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엮어놓은 그 힘으로 이제 새로운 땅에 그의 깃발을 꼽는다. 나는 그가 가는 길이 대단히 확신에 찬 걸음걸이임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가 가는 길에 또 다른 커다란 세계를 위해서 보다 천천히 그의 화폭 속에 좀 더 머물러 있어야 하며 그리고 한손을 비워둘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가다가 더 아름다운 일들을 손에 잡기 위해서 한손을 비워두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시대 논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