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ang-Wook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여행
유재길 ㅣ 홍익대교수. 미술비평
이강욱은 캔버스에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흰색 평면에 연필 드로잉이 복잡하게 그려지고 있다. 작은 점과 선들, 마치 미세한 세포 조직이나 우주 궤도와 은하수처럼 빛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풍경이 그려진다. 작가는 이를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계와 거시계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마치 유기체처럼 성장하는 세포 분열이나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가 자동기술법으로 제작된 느낌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도 없이 감각적으로 그려지는 <보이지 않는 공간(Invisible Space)>으로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최근 시리즈로 제작된 <보이지 않는 공간>은 3개의 복합 구조를 갖는다. 1990년대 후반 2중 구조와 다른 세분화된 구조이다. 먼저 첫 번째 공간은 화면의 맨 밑바탕으로 캔버스에 세포사진이 확대되어 보여 진다. 세포의 부분 이미지는 미시적 세계이다. 또한 둥근 세포 형상은 대부분 선명함을 잃어버린 흐린 상태로 초점이 없다. 색 바랜 청색 형상의 제1의 공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이미지이다. 이는 과거의 잊혀진 추억처럼 어렴풋이 세포 형상만 남아있다. 이는 무언가 존재함을 확인하려는 배경으로 세포의 소멸과 생성을 받쳐주는 공간으로 기초가 된다.
두 번째 공간은 연필 드로잉 작업으로 주인공 역할을 한다. 제1공간이 지나간 과거의 부분적 형상이라면, 제2공간은 현재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곳에는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선의 방향표시와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낯 선 풍경이 있다. 현재 진행형처럼 나타난 연필 선은 보이지 않는 현실 공간을 그리고 있다. 강줄기나 밤의 거리 불빛, 또는 무한계도를 상상하는 드로잉의 선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좌우, 상하로 자유롭게 그려진 중복된 점과 곡선은 구체적 대상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구체적 대상을 그리지 않는 선들의 반복 작업이 미시와 거시 세계를 암시한다.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여행은 과거에서 시작되어 이같은 현실로 이어진다.
세 번째 공간은 할로겐에 의해 비쳐지는 환상적 세계이다. 연필 드로잉 위에 뿌려진 반짝이는 자연광이나 보통 전구가 아닌 할로겐 조명에 의해 나타난다. 이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모습으로 할로겐 불빛을 통해 보는 내일의 공간이다. 할로겐 조명에 따라 반사되는 무지개 빛 색채는 화려하며, 환상적 느낌으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울러 이러한 표현 효과는 환경미술로 전개가 가능하다. 다채로운 시각 변화로 신선한 환경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일반 사람들의 상상력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보이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의 제3의 표면은 신비로운 공간으로 여행을 유도한다.
이처럼 근작에 나타난 3개의 복합 구조는 작가의 섬세한 감각(la sensation)을 바탕으로 자동기술법처럼 이루어진다. 미시와 거시, 또는 환상과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연필 드로잉은 무엇보다 감각을 바탕으로 제작된다. 그의 감각은 연약하게 보이면서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복합적 구조로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조한다. 독특한 3개의 공간 구조는 섬세함과 감각적 선들로 이루어진다. 미시와 거시 세계의 구조나 형상 작품은 작가와 너무나 닮아 있다. 복합 공간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작가 자신을 닮은 예술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화면에 비친 미시와 거시의 풍경들, 가늘고 긴 곡선과 깨알 같은 점들, 이러한 작은 단위의 조형요소는 우연과 유희적 성격을 갖는다. 아울러 무질서 속에서 조형적 질서는 선과 빛의 흐름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이는 순수 회화의 미적 탐구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공간에서 자아를 찾아 나서는 기나긴 여행으로의 출발이다. 작가 자신의 자아가 발견되는 이곳에서 우리 역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보이지 않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강욱이 탐구하려는 미시와 거시의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보들레르가 꿈꾸었던 <여행으로의 초대>(L’invitation au voyage)를 찾아본다.
“거기선, 일체가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로움, 고요 그리고 쾌락뿐이다.”
“Là, tout n’est qu’ordre et beauté, luxe, calme et volup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