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Soo-Nam
“꽃은 마음에 있다”
남천 송수남은 수묵화가이다. 평생을 수묵이라는 화두로 일관해 온 그의 역정에 대해 세상은 수묵인이라는 이름을 부쳐주었다. 수묵인으로서의 남천의 입지는 스스로 찍은 검은 점만큼이나 뚜렷하고, 자신이 그은 선만큼 굵고 분명한 것이다.
남천의 수묵은 물이 스미고 먹이 번지는 가운데 거침없고 끝없는 실험과 변신으로 일관된 것이다. 변화는 그에게 일상적인 것이었으며, 그를 지탱해 준 힘의 원천이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특별하다. 붉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화면 가득한 색채의 향연은 분명 의외일 수밖에 없다. 금욕적인 흑백의 화면 속에서 오로지 엄숙한 철리를 궁구하듯 외길 하나로 내달려온 남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저 파격이고 변화의 한 양상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합당한 부연 설명이 절실하다.
남천은 갈등과 갈증, 한계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어져 온 그리기의 충동을 토로한다. ‘검은 먹으로 붉은 노을을 그릴 수 없지 않은가?’라는 짧은 말 한마디는 그 갈등을 설명해 주는 것일 것이다. 흑백 대비의 단순하고 형이상학적인 화면은, 그리고 이를 통해 구축되어진 수묵화가라는 세간의 일관된 인식은 그에게 일종의 굴레와 부담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싶다는 충동은 붉은 노을을 붉게, 노란 꽃은 노랗게 칠하고자 하는 본능에 다름 아닐 것이다. 더욱이 어린 시절 수채화를 통해 그리기에 입문한 작가의 그리기 충동은 검고 흰 수묵의 세계에서도 그 숨이 살아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 잠재된 의식 깊은 곳에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던 충동과 갈등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실 남천의 색채에 대한 관심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과거 대담한 발색에 의한 산수의 경우 그 색채 운용은 얼마나 감각적인 것이었던가. 또 흑백 산수에서도 눈길이 가는 요처에서는 어김없이 정교한 색채로 강조를 하곤 하던 터이다. 사군자에 있어서도 수묵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색과 먹의 조화를 통해 절묘한 균형을 도모했던 그이다. 결국 색채에 대한 남천의 감각은 언제나 그 내면에 숨겨져 있던 하나의 충동이자 은밀한 유혹이었던 셈이다.
이번에 발표되는 작품들은 최근에 이루어 진 신작들이 아니다. 일찍이 1980년대 초부터 수묵 작업 틈틈이 예의 충동과 갈등이 있을 때 마다 여기 삼아 그 흔적을 담아 두었던 것들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근래에까지 축적되어 비로소 오늘의 모양을 이루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내밀하게 묵혀 놓았던 작품들이기에 그 양태는 사뭇 다양하다. 또 굳이 내보임을 전제로 하지 않았기에 대담하고 거침이 없다. 붉고 노란 꽃들은 명도 높은 안료들에 힘입어 티 없이 맑고 현란하다. 분명 화려하고 장식적이지만 결코 천하지 않은 품격을 지니고 있음은 그것이 비록 수묵은 아닐지라도 남천의 작업임을 확인시켜주는 유력한 증거일 것이다.
작품들은 모두 꽃이라는 단일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양을 보고 그 이름을 알아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붉고 노랗고 하얀 색으로 점철되어 진 것들도 있다. 애초에 꽃의 생태적 특성이나 모양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던 셈이다. 그저 꽃을 통하여 색채를 구현하고 유희를 즐기듯 마음 속 깊은 곳의 은밀한 충동을 삭힐 뿐이다.
남천은 이러한 꽃들에 ‘꽃은 마음에 있다.’라는 일련의 명제를 부여하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하지 않았던가. 꽃은 그 자체로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기 좋은 것이다. 이러한 꽃이 마음에 있다 할 때 그 꽃은 일종의 절대 가치와도 같은 것이다. 삶에 있어서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치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이는 완성된 인간이자 삶의 모습일 것이다. 남천이 굳이 ‘꽃은 마음에 있다.’라는 철리적 명제를 부친 것은 바로 이러한 경지에 이르고 싶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에 닮아가고 가까워지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를 표출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정녕 ‘꽃은 마음에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바에 집착한다면 모양 자체에 그치게 될 것이다. 분명 있지만 보이지 않고 알고 있지만 행하여 이루기는 한 없이 어려운 꽃 같은 삶, 향기로운 인생은 남천의 꽃이 은유하는 이상 세계일 것이다. 염화시중의 꽃이 단순히 한 송이의 연꽃에 그치는 것이 아니듯 남천의 꽃은 장미도, 모란도 아닌 이상화된 남천의 꽃인 셈이고, 그 꽃은 오로지 마음속에서 피어날 뿐이다.
남천의 꽃은 화사하다. 굳이 어렵고 두렵게 접근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열린 마음으로 솔직하고 천진하게 그 초대에 응할 일이다. 이러한 마음만이 비로소 그의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의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그 속에서 거닐고 노닐다 보면 절로 그 향기에 취할 것이고 절로 즐거워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꽃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꽃이 될 수 있음은 정녕 진정한 꽃은 마음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철 | 공평아트센터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