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작가13 : 일상을 넘다
미래의 작가13 : 일상을 넘다
권오상 김덕기 노세환 박성민 박지혜 안성하 윤병락 이강욱 이동재 이호련 이환권 정연두 정지현
2009. 03. 11(수) ~ 03. 31(화)
우리나라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불황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이 지나가고 지나오는 순환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수월하게 넘어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재단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드는 노력을 지금부터 한다면 분명히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일 것입니다.
노화랑의 2009년 첫 기획전인 《미래의 작가 13 : 일상을 넘다》는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미래의 한국 미술문화를 확대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전시입니다. 초대된 13명의 젊은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또한 각각 자신의 고유한 독창성을 표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가로 우리 미술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작가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일반 대중들에게도 꽤나 친숙하게 알려진 작가로 우리 미술시장을 이끌어갈 작가로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인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욱 넓게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기회부여가 바로 미래의 미술문화를 풍부하게 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어려운 미술시장에도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쌓여 우리 미술문화의 정체성은 견고하게 다져질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이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연두를 비롯하여, 조각의 새로운 매체를 도입하여 조각의 영역을 확대한 권오상, 시각적 착각현상을 조각에 도입한 이환권, 이런 착각현상을 평면에 도입한 이호련, 시각보다 더 세말하게 사물을 포착하여 평면에 그린 박성민, 안성하, 윤병락, 이동재, 정지현 등등 그동안 한국 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매체와 제작방법을 들고 나와 미술애호가들의 감각을 넓혀준 작가들입니다.
이번 전시는 미술애호가에게 한국미술문화의 미래를 이끌어갈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각각 다른 곳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서로 비교 감상하면서 자신의 미적인 감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미술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확대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현실의 디테일을 더듬는 민감한 촉수들
글 ‖ 임근혜(前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
숨막히는 질주의 끝에 마주친 막다른 골목. 어디까지 내달려야할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주자들을 향해 열린 출구는 따로 없다. 벽을 부수거나, 담을 넘거나, 멀리 우회하거나,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수 밖에. 잠시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고르는 그 짧은 순간 속에 지금껏 달려온 시간의 무게에 비례하는 묵직한 긴장감이 흐른다. 원하든 원치 않든 현실점검을 위한 시간과 상황이 주어졌다는 것은 어찌보면 축복이다. 한 방향으로 맹목적으로 치닫느라 보지 못한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고, 무심히 지나쳤던 보석을 다시 찾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미술계는 이미 몇 번의 전환기를 통해 이러한 경험을 학습해왔다. 1980년대 말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의 첨예한 이념 대립의 틈새에서 포스트모던한 신세대 미술을 건졌고, 1990년대 담론의 홍수가 지나간 후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내러티브와 감성이 그 공백을 메웠다. 그렇다면, 공공영역이나 비평계가 아닌 미술시장이 이끌어온 2000년대 미술은 느닷없이 찾아온 정체기의 끝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이것은 불투명한 현실 속에서 현실점검을 시작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미래의 작가》전은 13인의 작가들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불가능한 정답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논의의 한 단면을 제시한다.
작업방식이나 태도 그리고 내용이 전혀 다른 다수의 작가를 소수의 카테고리로 묶으려는 무모한 시도는 생략해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전시를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요소는 분명히 있으니, 이는 우리들의 일상과 관련된 현실의 이미지들이다. 회화와 사진으로서 전통적인 미술의 소재에 속하는 인물과 정물 그리고 풍경 등은 현대적인 감각과 첨단 기술 또는 수공적 노동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들이 비교적 편하고 쉽게 읽히는 일상적인 이미지를 다루게 된 배경에는 우선 모더니즘의 순수미학이나 거대담론의 부담감에서 자유로운 환경이 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유사 이래 최고의 호황’을 구가한 지난 2~3년 간 미술시장에서 탄탄하게 자리매김한 신인과 중견 사이의 작가들이란 점이다. 이로써 미술시장의 저변이 확대됨에 따라 모호하고 어려운 그림보다 즉각적 독해가 가능한 형상을 선호하는 대중적 취향이 반영되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사적 맥락이나 미술시장의 트렌드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작가에게 작업이란 미친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추스르고 세우기 위한 성찰과 치유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가족들이 함께 엮어가는 평범한 일상을 밝은 색채로 기록한 김덕기의 그림은 따뜻한 행복을 담고 있다. 자신의 그림을 ‘안락의자’에 비유한 마티스처럼 현실의 고단함과 무게감을 덜어준다. 이처럼 작가와 세상은 작품 속에 담긴 대상을 매개로 삼아 다양한 층위에서 소통한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사진을 방불케하는 소위 ‘극사실’ 기법의 회화 작품이 유례없는 강세를 보였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이미지의 생산과 가공이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에 굳이 작가의 손이 빚어낸 이미지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테크놀로지가 발달할수록 고도로 집중력과 숙련도가 만들어낸 재현의 기술과 수공적 작품의 가치가 더 크게 어필된다는 역설 역시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과일이 담긴 궤짝까지 정확하게 그려내는 ‘사과의 작가’ 윤병락의 경우 캔바스의 형태마저 대상의 윤곽선을 따라 오려냄으로써 이러한 재현성과 수공성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2000년대 한국의 미술시장이 사랑한 극사실회화의 특성은 이와 같은 작품의 외연을 넘어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얼음 속에 갇힌 식물과 과일을 재현한 박성민의 그림에서는 ‘차가운 이성으로 절제된 욕망(고충환)’과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성과 생명성(작가인터뷰)’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유리잔에 담긴 막대 사탕이나 담배꽁초를 그린 안성하의 작품에서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막대사탕처럼 달콤하며 담배연기처럼 덧없지만 결코 가벼울 수만은 없는 작가의 실존적 존재감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인물을 다룬 극사실풍의 회화는 마치 무심히 꺼내든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듯 찰나적인 순간을 포착하기도 한다. 치마를 들추거나 내리는 이미지를 충첩시켜 정중동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호련과 역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심히 프레임 밖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박지혜는 여성의 신체를 둘러싼 노출증과 관음증의 심리가 교차하는 은밀한 긴장을 연출한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대결을 연상시키는 극사실풍 회화의 틈에서 실재하는 대상이 아닌 상상속의 존재나 이미지가 남긴 여운은 오히려 더 강렬하다. 정지현은 사막의 물고기나 편안하고 익숙한 가구를 비집고 자라는 선인장 그리고 화려한 외양을 뒤덮고 있는 가시와 곰팡이 등 불길한 악몽같은 이미지를 그린다. 그리고 동년배의 작가들 사이에서는 드물게 추상작업을 하는 이강욱은 무의식적 드로잉을 통해 우주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현실적 이미지가 담지 못하는 의식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환권과 권오상은 깍아내거나 살을 붙이는 전통적 조소의 방식 위에 새로운 기법과 감성을 더한 작가들이다. 이환권은 마치 삼차원 포토샵이라도 이용한 듯이 인체를 길게 늘리거나 납작하게 줄이는 등 비례와 원근법을 왜곡하여 공간감을 교란시키고, 권오상은 스티로폼 조각 위에 수천장의 사진을 붙여 만든 ‘사진조각’을 통해 2차원 매체가 3차원 매체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디테일의 변화와 실재성의 상실을 부각시킨다. 이동재 역시 이렇게 새로운 재료를 통해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쌀알을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처럼 다루어 현대사의 걸출한 인물들의 초상을 점점이 그림으로써 ‘오브제와 도상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확장(작가노트)’한다.
회화에 이어 주요 장르로 부상한 사진도 우리의 의식이 포착하지 못한 일상의 이면을 다룬 다. 도로, 자동차, 행인, 건물 등 대도시 거리의 풍경을 찍은 노세환은 ‘도시에 범람하는 강렬한 흐름’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내사랑 지니><원더랜드><로케이션> 등의 연작을 통해 현실과 추억 그리고 꿈을 교차시킨 정연두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담긴 희망과 열정에 주목한다.
《미래의 작가》 전시가 선보이는 13인의 작가들은 2000년대의 열광과 환호를 뒤로 하고 냉철한 현실점검이 필요한 시점에서 우리 미술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모호한 형이상학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의 디테일을 감지하는 민감한 촉수를 지녔다. 그리고 전통과 현대를 다양하게 넘나드는 기술,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글로벌 감성에 어필하는 세련된 표현으로 동시대성을 획득하였다.
주로 30대에 속하는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 미술계의 주류에 진출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다름 아닌 ‘시장’의 힘이었다. 급속히 두터워진 콜렉터층의 수요와 잠재적 투자가치를 좇아 유망한 신인작가발굴과 육성에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술경제의 하부구조가 다져지고 젊은 작가들의 작업조건과 환경이 개선되었으며 시장의 문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공영역에서의 비평적 검증보다 시장의 취향이 앞섰기 때문에, 작가는 물론 감상자 또는 콜렉터 역시 미술의 내적 논리보다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기 쉬웠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불현듯 다가온 경기침체가 작품가격과 경매실적으로 작가를 평가하는 불온한 현실에 종지부를 찍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시장의 거품 속에 가려져 있던 치열한 작가 정신과 작품 내면의 깊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려놓고 재평가할 시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술이 물질만능주의에 강퍅해진 영혼을 치유하고 교감하는 본래의 정신적 기능을 회복하리라는 순진한 기대는 다시 한번 가져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