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
남관의 密語 – 추상적 구상, 구상적 추상
이구열 | 미술평론가
한국양화사에서 남관의 위상은 선명한 독창적 표현방법으로 순수한 세계성의 회화를 창출한 가장 두드러진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간단하게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역작들의 놀랍게 치밀한 조형작업과 거기에 부여된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색상의 밀도는 그런 간단한 말로 그칠 수 없는 엄숙한 심도(深度)로 빛나고 있다.
그는 6·25전쟁 직후인 1955년 연초에 세계의 미술중심으로 여기던 파리행을 단행하여 숫한 고난을 견디며 앞에 말한 그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했던 것인데, 그것은 국제미술동향에 정면으로도 도전케 한 파리의 자극, 특히 앵포르멜 미학의 열풍을 창조적으로 소화한 것이었다. 그는 남다른 감성의 창의적 조형의식으로 기법과 표현의 독자성을 추구하면서 파리 시기를 아주 값지게 했던 것이다. 파리시기의 남관의 결정적인 성공은 체불 10년이 되던1966년에 프랑스 미술평론가의 추천으로 권위 있는 망통 회화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독특한 추상적 구상 작품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이 일약 1등상을 차지한 것이었다. 그에 앞서 그는 1962년에 파리에서 가진 개인전 출품작<허물어진 제단>이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 시기의 남관의 작품모티프와 창작적 상상의 대상이 그렇게 어떤 고적의 역사적 발언과 인간의 삶의 역사에 결부된 것이었고, 그 침묵의 메시지에 집착하며 인간과 역사의 서사적 상상을 표현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작품들이 모두 인간적 상상의 존엄을 내재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남관 예술의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그 형상들은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표현으로 지향 된 것이었다. 그는 파리에서의 13년 작업을 일단 끝내고 1986년에 서울로 돌아와 홍익 대학교수로 10년 가량 재직하기도 했으나 그의 끊임없는 작품 열정과 새로운 창작 정신은 지속적으로 발휘되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본질은 내내 ‘인간과 그 삶의 존엄’ 의 상징적 표상이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언제나 내포 시키려고 한 메시지는 “잔혹한 고비를 넘어온 인간상, 자기이외의 어떤 커다란 힘이나 신(神)에 의지하지 않고 악착같이 삶을 이어가려고 한 그런 인간상에 한층 나의 마음이 이끌리곤 했다” 는 말(파리의 한 평론가의 대담에서)에 시사돼있다.
이번에 노화랑에서 처음 공개 전시되는 남관의 ‘인간 연작’ 소품 수십 점에서 새삼 확인되는 것은 작가가 얼마나 항시 인간의 여러 모습과 그 존재의 존엄을 끊임없이 관심하며 그것을 부단히 그림으로 추구하려고 했던 가의 확실성이다. 1975-80년의 사인이 들어있는 종이와 캔버스의 이 유채 소품들은 주로 단신의 인간상을 그리고 있는데, 그 형상은 남관의 전형적인 작품 방법인 추상적 구상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작용한 즉흥적 습작 작업 같기도 하고, 중도에 그리기를 중단한 듯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태 자체로 남관의 전형적 작품분위기는 잘 발현돼있다. 여러 표정과 움직임의 그 인간상들은 대작을 염두에 두면서 무대 감독이 개개의 등장인물과 역할을 연출하듯이 간략하게 형상 되어 있지만, 남관의 독자성인 네거티브 콜라주 기법의 조형적 묘미와 신비감의 아름다운 색상 등은 인물상의 비밀스럽고 혹은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표상으로 모두 매혹적이다. 남관은 그 연작을 진행하면서 혼자 철학적 또는 종교적 사고의 온갖 생각과 상상의 심리상태를 스스로 즐기려고 했을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자신과 의 밀어(密語)의 이야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