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생성과 구조
인사말
이번「김태호 」전은 1978년부터 현재까지의 화업을 총 망라한 화집의 출판을 기념하는 동시에 새로운 근작들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김태호는 7-80년대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대표적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그 성과를 독자적으로 내면화한 중진작가입니다.
김태호의 조형적 편력은 순수평면회화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연장선상에서, 세 개의 시대와 방법으로 분류됩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지속해온 <형상>시리즈, 80년대 후반에 시도된 종이 작업과 그것을 통한 전면화의 작업,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리드(격자)의 구조 속에 치밀한 내재적 리듬을 추구해온 <내재율(Internal Rhythm)>시리즈입니다. 이 작업은 스무 가지 색면의 축적과 그 표면을 끌칼로 긁어내며 이루어지는 추상회화로, 모노톤의 화면에 여러 색점들이 점멸하듯 드러나는 신비한 화면을 구사합니다. 이는 여러 색의 물감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칠하고, 깎아내는 규칙적인 행위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하는 작업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김태호의 작품은 우연성에 의지하지 않고, 장인적 기질에 의한 치밀한 계획과 실천으로 탄생한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성과물입니다. 때문에 많은 논평자들은 그를 두고 “철저한 장인기질”의 소유자로 평가합니다. 또한, 김태호는 한 시대의 미의식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형상세계를 천착해 왔습니다.
이 전시가 지난 30년간 이루어온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태호의 앞으로의 화업에도 지속적인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2006년 10월
노화랑 노승진
생성과 구조 – 김태호의 작품세계
오광수(미술평론가)
김태호의 지금까지 조형적 편력은 대체로 세 개의 시대와 방법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지속해온 <형상>시리즈가 그 하나요, 80년대 후반에 시도된 종이 작업과 그것을 통한 전면화의 작업이 또 하나며, 2000년에 오면서 그리드의 구조 속에 치밀한 내재적 리듬을 추구해오고 있는 근작이 또 하나다. 30년을 상회하는 작가의 편력으로서는 비교적 간략한 편이다. 변화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에 충실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30년의 우리 현대미술의 기상도를 참작해볼 때 더욱 그런 인상을 준다. 그의 작가로서의 데뷔 시기인 7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현대미술은 금욕적인 단색이 주조가 되면서 화면에서 일체의 일류젼을 기피하던 시대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형상에 몰두해왔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대적 미의식에 쉽사리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조형언어를 고집스럽게 추구해왔다고 하는 것은 단연 이채로움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신념을 피력한 것이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나 현대미술의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은 자신과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데뷔시절과 이후의 전개양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이로서 시사된다. 이 시기를 통해 많은 전시에서의 수상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그만큼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작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초기의 <형상>시리즈는 형식적인 면에서 대비적이라 할 수 있는 수직과 수평이란 직조와 일류젼으로서의 인체의 이미지와 무기적인 블라인드의 결합이란 매우 이색적인 면모를 보인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감지되는 여체의 이미지가 어두운 화면의 바탕에서 명멸되었다. 다분히 연극적인 표상의 방법이라고나 할까. 깜깜한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등장하는 배우의 모습을 충분히 연상시킬 수 있다. 그런데 등장된 인체는 자신을 완전히 들어내지 않고 극히 부분적인 현전에 치우쳐 있는 편이다. 그러기에 더욱 신비로운 예감을 지닌다. 그것은 또한 여체란 분명한 지시적 내용이면서도 단순한 여체가 아닌, 해석된 이미지의 또 다른 구현이란 점에서 독특한 구조성을 띤 것이었다. 수직으로 등장하는 여체에 무수히 가로지르는 블라인드의 수평선이 미묘하게 직조되면서 극적인 상황을 유도해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의 이쪽과 저쪽이란 시각적 차원이 마련되면서 이른바 공간의 이원성이 화면의 기조가 되고 있다. 이 공간의 이원성은 그 외양과 형식을 달리 하면서도 이후의 그의 작품의 근간으로 부단히 작용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데 아마도 그의 작품이 갖는 극적 상황은 여기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감추어진 것과 드러난 것의 끊임없는 직조는 구조적이자 동시에 심미적인 요소를 함축한 것이 된다. 이 안과 밖의 구조를 두고 김복영은 비정한 시대의 경직된 사회상을 읽으려고 하는가 하면,(1) 이일은 “분명한 형태와 정연한 구성, 그리고 그것을 물들이고 있는 경질성의 환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환상적인 여운을”(2)을 발견하고 있다. 블라인드의 무기적인 질료가 들어내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성에 대비되게 여체라는 생명의 유기적 이미지가 미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화면은 그만큼 경직된 시대의 내면도 감지케 하며 동시에 환상적인 시각의 풍요로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메카닉한 구조의 견고성에 대비적인 인체의 환상적 공존은 그의 근작에로 이어지는 밖의 구조와 안의 리듬이란 기본적 패턴에 그대로 상응하고 있다. 언젠가 나는 그의 작품을 두고 지속 가운데의 변모란 지적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안과 밖은 이미 초기의 작품 속에도 짙게 인식되지만 동시에 근작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논평자들이 그를 두고 “철저한 장인기질”(3)의 소유자로 평가하고 있음은 어쩌면 이 일관성에 그대로 연계된다 할 수 있다. 결코 우연성에 의지하지 않는 치밀한 계획과 실천이 철저한 장인적 기질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가 한 시대의 미의식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형상세계를 천착해온 것도 이에 말미암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예술가는 있어도 장인은 없다란 말이 우리 미술계에 회자되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겉멋만 횡행하고 있지 예술을 지탱시켜줄 철저한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장인적 기질이 없는 예술가들의 말로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온 터이다. 손쉽게 기계적 작업에 의존하는 측면이 많아지고 있는 현대에 올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도 그의 작업태도는 교훈으로서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조정권이 그를 두고 “머리 속에서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부터 완결성을 미리 염두에 두는 면밀한 사고형의 작가”(4)란 지적 역시 철저한 장인정신을 소유한 작가란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작가에 따라 굴곡이 심한 경우가 있다. 때로 뛰어난 작품이 창작되다가도 때로는 타작을 남발하는 경우 말이다. 이 일관성의 결여는 말할 나위도 없이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에 다름 아니다. 김태호의 작품이 초기에서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고른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철저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 나위도 없다.
80년대에 오면 형상과 구성이 더욱 내밀화 되어 가는 특징을 들어내고 있다. 그런만큼 심미적인 요소가 풍부해지고 있다. 이일은 이를 두고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한 미묘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게”(5)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분명히 지시적이었던 여체는 80년대로 들어오면서는 지시성을 극복하면서 이미 여체가 아닌 또 다른 형상의 창조로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유기적인 곡면과 생성의 리듬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것을 여체라는 특정한 이미지로 귀속시키기엔 그 자체가 이미지화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구체적인 영상의 내용성을 탈각했을 때 화면은 그 자체의 구성 논리 위에 자립하게 된다. 여체라는 지시적 내용성이 선명히 부각되었던 초기의 작품들은 이 점에서 아직 화면 자체의 구조적 논리성을 충분히 획득하지 못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개폐의 이원성도 극적인 대비보다는 대비와 화해의 공존을 통해 더욱 밀도 높은 시각적 충일로 이어지는 것도 그의 조형의 성숙을 시사하는 것이다.
성숙은 또 다른 모색의 장으로 진행될 때 그것의 참다운 의미를 수렴할 수 있다. 이 무렵 그가 한지와 판화 작업에 기우러진 것도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한지의 작업과 판화의 작업은 상호 견인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화를 찍어내면서 종이의 속성이 갖는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그것이 한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의 제작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80년대로 접어들면서 현대작가들에 의한 한지의 선호도가 보편화되고 있었던 점도 떠올릴 수 있다. 지지체로서의 한지의 발견은 단순한 소지의 발견이란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한지에 함축되어 있는 우리 고유한 정서가 현대작가들에게 공감됨으로써 고유한 정서와 미술의 정체성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의 선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지란 단순한 매개물이라기보다 신체성으로서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지에 에워싸인 공간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들에게 한지는 단순한 재료 이상의 것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한지를 지지체로 선택하게 되는 이면엔 종이의 물성에 대한 일정한 체험에도 연유하지만 우리 고유의 정서의 회복이란 문화적 자각현상과도 깊게 맥락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지적한바 있듯이 김태호의 작가적 역량이 장인기질에서 크게 연유된다는 점을 떠올려볼 때 판화에의 집중적인 작업성과는 놀랄 만한 결과를 예고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86년 서울 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의 대상과 이어지는 해외전과 판화 개인전은 판화가로서의 그의 위상을 확고히 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한지의 사용은 판화를 통한 충분한 개연성을 내장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이가 갖는 질료의 특수성은 그대로 한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지를 바탕으로한 그의 작업은 캔버스 위의 작업과 괴를 같이 하면서도 종이의 물성에 대한 반응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내면을 살필 수 있다. 이는 종이를 단순한 지지체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질료의 반응이란 상호 교차적인 관계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종이 위에 그어지는 필선과 필선의 자국에 의해 종이가 밀리면서 부분적으로 찢어지고 부분적으로 밀린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화면은 무언가 화면 위에서 펼쳐진 대결의 장을 연상케 하고 있다. 바탕과 행위의 적절한 교접은 재질의 특수성이 부단히 표현의 수단으로 수렴되면서 미묘하고도 풍부한 내면성을 띠게 된다. 어쩌면 이 같은 요소는 안과 밖의 구조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끈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한 시각상의 안과 밖이 아니라 구체적인 질료를 통한 안과 밖이란 구조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일은 이를 두고 “그 이행이 단순한 재료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 그의 회화세계 전체의 변모를 가져다준”(6)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직도 직선과 곡선이란 대비적 조형요소로 인한 구성 패턴은 지속되지만 전면성으로 나아가는 변화적 기미는 넓이와 깊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예감시킨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일차적 현상이 다름 아닌 반복 패턴과 전면화 현상이다. 수직과 수평이란 구조의 반복적 핸드라이팅은 근작의 밀집된 구성을 예감시키지만 이 무렵의 작품은 근작에 비해 훨씬 평면적이다. 그린다는 행위의 반복과 동시에 평면화의 진행은 회화성의 회복과 동시에 모노크롬이라는 시대적 미의식에로 연결되게 하는 미묘한 상황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김영순의 다음 지적이 그 적절한 해답이 될 것 같다. “그것은 김태호가 70-80년대의 대표적 형상작가로서 고유세계를 구축했던 다색의 일류젼 회화의 자취와 동시대를 주도했던 이른바 모노크롬 회화라고 불리는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성과가 변증법적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융합된 경지이다.”(7) 사실 그렇긴 하나 김태호의 모노크롬적 현상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들어내놓은 것이다. 일정한 하나의 색조로 뒤덮이는 모노크롬과는 대비적이게 그의 화면은 많은 색조들에 의해 뒤덮인 표면이다. 다색의 선조가 화면 전체를 뒤덮으면서 나타나는 다분히 생성적인 화면이다. 이 같은 화면상의 특징을 두고 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그의 화면은 색 층에 의한 일정한 평면 구조로서의 밖의 풍경을 지니고 있지만 무수한 선조들에 의해 가늘게 숨쉬고 있는 생동의 안의 풍경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밖의 구조와 안의 결이 미묘하게 일체화되어 있는 화면을 대하는 것이다”(8)라고. 아마도 이와 같은 과정이 없었더라면 근작의 구조는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따라서 반복과 전면성이 강조된 종이 이후의 작업은 일종의 과도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시차로 본다면 그의 모노크롬은 때늦은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로 이어진 모노크롬의 주류화란 시각에서 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가 도달한 모노크롬은 자신의 작업의 일정한 과정의 결과로서이지 경향에 대한 일정한 반응으로서의 현상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모노크롬은 퍽 예외적이란 수식이 가능할 것 같다.
김태호의 근작은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시작된 일정한 필선과 색료의 응어리로 이루어지는 연작을 가리킨다. 우선, 표면적으로 근작은 이전의 작품들과 심한 대비현상을 이룬다. 무엇보다 안료의 두꺼운 층에 의해 이루어지는 육중한 매스가 초기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환시적인 평면성, 중기의 종이의 물성과 전면화에로의 시도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이다. 먼저 작가의 작업상의 과정을 엿들어보자. “먼저 캔버스에 격자의 선을 긋는다. 선을 따라 일정한 호흡과 질서로 물감을 붓으로 쳐서 쌓아간다. 보통은 스무 가지 색 면의 층을 축적해서 두껍게 쌓인 표면을 끌칼로 깎아내면 물감 층에 숨어있던 색 점들이 살아나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축적 행위의 중복에 의해 짜여진 그리드 사이에는 수많은 사각의 작은 방(집)이 지어진다. 벌집 같은 작은 방 하나 하나에서 저마다 생명을 뿜어내는 소우주를 본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의 컨셉은 쌓기와 긁어내기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드란 얼개를 상정하고 여기에다 반복되는 직선을 통해 일정한 두께가 만들어지면서 그리드의 안은 작은 동공으로 밀집되게 된다. 이렇게 쌓아올린 색 층을 부분적으로 긁어냄으로써 역설적인 방법이 강구된다. 이 방법이야말로 그의 말대로 “지워냄으로써 드러나는 역설의 구조”에 다름 아니다. 많은 색채가 쌓아올려졌기 때문에 끌칼로 부분 부분을 깎아내면 물감 층에 숨어있던 색 점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게 된다. 마치 생명의 숨결처럼 그것은 미묘한 리듬으로 작용하게 된다. 견고한 바깥의 구조에 대비되게 섬세한 안의 리듬은 신비로운 생성의 차원을 일구어낸다. 초기의 표상의 이원성에서 방법의 이원성으로 전이되어 왔다 고나 할까.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방법이 부단히 표상을 앞질러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의 방법은 바탕 만들기에서 그 과정의 치밀성을 들어낸다. 보통 20가지 색면 층을 축적 시켜 나가는 일 자체가 엄청난 도로에 값한다. 또한 이를 적절하게 다듬어가는 긁어내기는 더욱 도로로 비친다. 무수하게 색 층을 쌓아올리는 일도 그렇거니와 쌓아올린 색 층을 긁어낸다는 것은 더욱 황당한 일로 치부되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긁어냄으로써 획득되는 미묘한 물감 층의 리듬이 없었더라면, 색깔들이 만드는 신비로운 광채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무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빼곡하게 채워지는 작은 방들의 내밀한 구성이 자아내는 웅장한 합창이 없었더라면 이 또한 얼마나 싱거운 표면이겠는가. 덕지덕지 쌓아올린 안료 층의 육중한 시각적 압도는 만약 그 내면에 끊임없이 생성되는 생명의 리듬이 없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바시게오는 이를 두고 “물리적 평면이 아닌 회화 이외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9)고 지적한바 있는데 회화 이외의 것이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인 회화의 차원을 넘어선 현상을 예시하는 것은 아닐까. “촉감과 시각, 시간과 공간이 동일 차원에서 만나고 분산되어 중심도 끝도 없이 전개”(10)됨으로써 일반적 회화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근작은 평면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회화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주)
1) 김복영은 <은폐와 개시의 이원성>( 월간미술 2004, 2)에서 “수평의 샷터와 그 속에 그려진 수직의 인간상이 만드는 그리드야말로 비정한 시대의 경직된 사회상을 지시하는 최상의 기표(시내티앙)였음이 틀림없다”고 피력하고 있다.
2) 이일 77년 개인전 서문
3) 이일 94년 개인전 서문에서 지적된 장인적 기질도 그 중의 하나다.
4) 조정권 <작가와의 대화> 월간미술 1989, 11
5) 이일 84년 개인전 서문
6) 이일 같은 서문
7) 김영순 2001년 개인전 서문
8) 오광수 <대비적인 조형에서 종합의 조형으로> 월간미술 1989, 11
9) 지바시게오 2002년 동경화랑 개인전 서문
10) 김영순 2001년 개인전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