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락
윤병락
몇 년 전부터 윤병락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사과를 그린 탓에 ‘사과 작가’ 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젊은 여인의 탱탱한 가슴을 닮은 그의 사과는 이브의 사과처럼 관람자를 유혹한다. 사과들의 집합과 분산을 통해 질서와 무질서의 조화를 치밀하게 구성한 화면은 질서감각으로 충만한 세잔의 화면 속 사과를 떠올리게 한다. 궤짝에서 굴러 떨어진 사과는 아예 그림틀을 벗어나 벽면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아래쪽으로 향하는 물체의 무게뿐이며 물체는 중력가속도와 같은 가속도로 떨어진다는 뉴턴의 이론을 여기에 끌어들일 순 없겠지만, 분명히 이 사과는 필연적으로 바닥에 떨어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근 들어 윤병락의 농익은 사과들은 관람자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미술품 콜렉터들의 애호품이 되어 버렸다.
감각의 전이
어린 시절 사과밭으로 유명했던 고향 영천에서 친구들과 사과를 서리해서 먹던 추억은 작가의 정신을 비옥하게 만드는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소년은 불법의 쾌락에 스스로를 던지듯 금단의 영역으로 침입한다. 사과를 따는 순간의 전율, 성급한 입맞춤과 동시에 달콤한 과즙은 소년의 목젖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린다. 그림 속 과일들은 농염한 자태로 마치 호객 행위를 하듯 관람자의 시선을 유혹한다. 관람자와 과일 사이의 내밀한 커뮤니케이션은 관능과 축제의 감동을 녹아들게 할 선택 받은 순간을 형성한다. 붓 자국을 전혀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극명하게 대상을 재현함으로써 일루전의 극대화를 이루는 ‘눈속임’(trompe l’oeil) 기법은 과일 표면의 숨구멍, 궤짝의 나뭇결, 녹이 쓴 못 자국, 구겨진 신문지의 글씨들과 흘러내리고 있는 접착제에서 그 절정에 이른 듯하다
윤병락의 그림 속에 있는 부동적인 대상들은 의도적으로 치밀하게 배치된 공간구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물체로 바뀐다. 그림 공간 위로 던져지는 관람자의 시선이 움직이면서, 그림 속 물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변하는 것이다. 작가가 각색한 무대공간, 즉 궤짝에서 과일들은 제각기 다른 역할을 가진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을 담고 있다. 그의 과일들은 ‘실체’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의 ‘현존’은 안에 꽉 차있다. 바로 이것이 윤병락이 단순히 일루전, 다시 말해 허구를 창출하는 기술을 뛰어넘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의 에술세계에서 추구해야 할 점일 것이다. 비옥한 토양과 사계절의 흐름,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겸허한 농부의 땀방울에 의해 영그는 과일, 그것이 뿜어내는 생명의 환희를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정성스레 가꾸어야 한다. 이것이 예술작품 창조자 윤병락의 신성하고 유일한 의무일 것이다
변형캔버스를 통한 공간인식의 확장
Shaped Canvas(캔버스의 모양에 변화를 준 변형캔버스)에 그려진 본인의 작품은 ‘작품’ 그 자체가 오브제화 되어 있다. 여기에 화면 내부의 빛 방향과 전시장의 조명을 의도적으로 일치시켜 줌으로써 화면 외부의 공간까지도 작품의 일부분으로 인식시키고자한다.
이는 공간 속으로의 무한한 확장을 의도하여 작품과 그주변 공간이, 즉 가상의 공간과 실존의 공간이 서로 호흡하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