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석
주태석의 회화와 재현의 문제
주태석의 회화는 일반적으로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의 범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것은 그리 잘못된 규정은 아니라고 보지만, 극사실주의의 본질, 극사실주의와 주태석의 작업 간의 공통점 및 차이점에 대한 논평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주태석은 70년 대 말 극사실주의 화풍의 <기차길> 연작으로 작품활동을 개시했고, 80년 이후 현재까지도 역시 매우 사실적인 방법에 기반한 <자연.이미지(Nature.Image)> 연작을 해오고 있다.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대상’, 즉 재현된 결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보는 장치’로서의 확장된 위상을 갖게 된다. 주태석이 부각시킨 ‘보는 장치’는 대상(즉 재현된 기차길)과 바라보는 주체, 이 양자를 분리 불가능한 관계항적 구조 속에 함께 포괄한다. 그리고 하나의 시각적 재현으로서의 그림이란 “바로 지금, 주체의 적극적인 신체적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적, 비가시적 과정”으로서 드러난다. 그럼으로써 그림의 목적은 기차길, 나무, 자연풍경 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재현의 과정과 타당성에 대해 질문하는 일종의 자기반성적 특징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주태석은 작업노트에 “회화는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하여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한다”라는 명제 – 동서고금의 어떤 예술에도 당연히 적용될 만한 평범한 명제 – 를 써 놓은 바 있는데, 이 명제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주태석이 80년대 후반 이후 현재까지 지속해 온 <자연.이미지> 연작의 특징은 극사실주의의 일반적 스타일과는 매우 상이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여러 개로 분할된 화면을 들 수 있다. 분할된 화면들은 각각 다른 기법으로 다른 시점에서 그려진 그림들이다. 이 화면들은 상호 간에 완벽하게 연결되지 않는, 그렇다고 해서 전적인 불연속도 아닌 모호한 조합의 상태 속에 있다. 그리고 전면에는 항상 나무 한 두 그루가 여러 화면들을 배경삼아 서 있다. 여기서 나무는 상당히 사실적인 방법으로 묘사되고, 이에 반해 그 배경은 몽환적으로 그려진 그림자의 풍경이다. 그 배경이 전면의 나무의 배경인지, 그 그림자들이 정말 나무의 그림자인지도 모호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연.이미지> 연작은 ‘하나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분열된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초점이 있는 <기차길> 연작에서처럼 그림 내부에 일종의 대립과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단 <자연.이미지> 연작은 여러 이질적 재현들이 공존, 충돌하는 방식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분열적 구조는 달리 말하면 바라보는 시선의 분열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그 그림들은 회화적 재현 자체를 이미 분열되고 불안정하게 얽혀있는 환상적 가설무대처럼 보여준다.
그림의 소재를 구성하는 ‘나무’, ‘그림자’ 등의 풍경은 소위 ‘자연의 정취와 개인적 낭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화의 진리적 기능 그 자체에 대한 비평을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하여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어야 한다”는 그의 명제는, 그 어떤 대상이건 그것이 회화의 재현적 세계로 옮겨지는 순간 본래로부터 일탈된 다른 무엇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필연에 대한 생각을 함축하는 것이다.
– 김원방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