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성
이미지와 사물 사이의 상상력
“그의 작업은 이미지와 질료와의 관계 추구이다. 그는 이미지의 본질을 우리의 시각과 사고의 관계로 접근시킨다. ‘꽃’의 이미지를 통해 ‘사물’을 본질적으로 접근하려 시도하고 있다. ”- 미술평론가 조광석
“이미지와 실재의 사이에서 작가는 나무 이미지를 ‘만든다’. 이는 일류전과 실재, 평면과 이미지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나무 이미지와 평면공간의 지각관계를 추구하며, 실재와 이미지 관계를 나타내고자 한다.” 미술평론가 윤진섭
“ 그의 <사이-식물> 연작은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는 사물 자체보다 사물(나무, 꽃 등 식물 이미지)과 사물(철사, 알루미늄 등 금속 안료)들의 차이. 간극. 틈새를 다루고 있다. 틈새는 시간적 거리와 공간적 거리를 사물에 도입하면서….사물들의 개체화를 보여준다. 꽃과 타자들의 익명적 관계 표현도 중요하다… 꽃의 이미지와 주변 물성들과의 미묘한 앙상블은 그 자신의 시각언어로 특별한 미적 가치를 갖는다.” 미술평론가 김복영
이와 같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박훈성의 회화는 일반적으로 이미지와 사물과의 관계 탐구로 해석된다. 극사실로 묘사된 그의 식물 이미지는 화사한 장미꽃을 비롯하여 장식성이 매우 뛰어나다. 매끄러운 표면과 밝은 색채, 섬세한 세부 묘사로 식물 이미지가 화려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빈 공간(여백)에 붙여진 금속 물질이나 작고 큰 원형의 구멍은 이러한 장식성과 조화를 깨뜨리고 있다. 꽃의 부드러움은 파괴되고 전혀 다른 물질이 주변을 맴돌면서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작가는 이것을 한마디로 “우리의 고정된 시각과 개념에 변화를 주기 위한 충돌”이라고 말한다.
커다란 캔버스에 확대 묘사된 장미꽃이나 식물 이미지, 그리고 화면 가장 자리에 뚫린 원형의 구멍들, 또는 매끄러운 알루미늄의 금속성 표면에 그려진 극사실적 꽃 이미지와 금속성 이물질의 릴리프 작업, 이러한 박훈성의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 묘사나 재현의 장식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와 사물과의 관계 탐구,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고정된 관념에 변화를 주고 싶어한다.
최근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박훈성의 <사이-식물(Between-Plants)> 연작은 이처럼 우리의 시각과 개념, 상상력에 충돌을 일으킨다. 화려하게 묘사된 장미꽃이 아름다운 장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에 의해 더욱 우리의 의식에 충격을 주는 것이다.
박훈성의 꽃 이미지는 따듯하고 부드럽다. 만져보고 싶은 이미지로 정교함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이에 반해 금속의 배경과 구성된 물질은 매끄럽게 처리되어 차갑기만 하다. 따듯함과 차가움이 교차되는 이중적 구조의 그의 작품 앞에서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인식이다. 이중성은 이미지와 오브제의 조형적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즉, 꽃은 극사실에 가까운 사실묘사로 실물처럼 보이는 시각적 환영에 빠진다. 반면에 배경이나 꽃 주변에 부조처럼 붙여진 물질들은 추상이다. 꽃이나 식물 이미지와 전혀 다른 선(線)과 구멍(圓形), 오브제들로 구체적 형상이나 의미를 찾아 볼 수 없다. 구체적 사물의 극사실 이미지와 추상성이 캔버스나 알루미늄, 또는 불투명 플라스틱 평면에 교묘하게 구성되어 나간다.
전면에 보여지는 이미지 형상도 단순한 시각적 재현만은 아니다. 소품과 달리 캔버스 작업에서는 장미꽃이나 식물 이미지 경우 실물보다 엄청 크게 확대되어 관객을 포옹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소재가 주는 장식적 효과를 뛰어 넘어 사물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친근감과 포용력을 보여주게 된다. 이에 반해 금속 물질이나 매끄러운 배경은 거절하는 듯한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따듯함과 차가움, 포용력과 위압감, 이미지의 구상성과 공간이나 사물의 추상성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주제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회화는 단순히 장식적 즐거움을 주는 이미지 재현이나, 난해한 개념의 시각적 유희가 아님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작업은 “이미지와 사물과의 관계 탐구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인식과 개념에 변화”라는 것에 공감을 갖는 이유이다.
한편 이미지와 사물과의 관계 탐구를 통한 인식 변화와 개념 파괴는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여기에서 이미지와 사물과 ‘사이’가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여기서 필자는 그 사이에 ‘상상력의 존재’를 언급하고자 한다. 시각적 이미지와 사물의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지와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인가, 아니면 환영과 실재의 거리감인가 하는 문제 제기가 주목되어 왔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을 이미지와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력의 개입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