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식 샨판 2人展
공존의 방식 – 동양으로부터의 제안 : 이두식, 샨판展에 부쳐
‘ 무력이 강하면 오히려 적을 이길 수 없고,
나무도 억세면 결국 생명을 마치고 만다.
그러니 강하고 큰 것은 결국 아래에 깔리게 마련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로 오르게 마련이다. ‘
– 노자
새뮤얼 헌팅턴은 1996년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20세기의 이념적, 정치적 대립 이후, 새로운 세기에는 서로 다른 문명간의, 특히 종교적 대립과 갈등이 있을 것임을 주목했다. 그리고 결국 거시적인 측면에서 그 양상은 서구와 비서구의 충돌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문명의 충돌’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기 때문에 헌팅턴의 논의는 전혀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론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우리는 ‘문명의 충돌’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문명의 충돌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점점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그로 인한 범죄, 빈곤의 심화와 환경오염은 전 지구를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지금이 바로 ‘문명의 공존’을 위한 대안을 논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그 힘을 동양의 정신에서 찾고자 한다. 동양의 정신은 노자의 도(道) 사상이 그러하듯 물과 같은 부드러운 특성 속에서 자(自)와 타(他)의 음화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주된 맥락은 동양 정신이 회화를 통해 표출되는 방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방식 안에서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 그리고 정신과 물질이라는 대립 극들이 어떻게 서로의 기운을 북돋우며 조화롭게 생동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두식, 샨 판이라는 작가가보여주고 있는 존의 방식’을 통해서 ‘문명의 공존’에 대한 대안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이두식의 작품활동은 3시기로 구분된다. 1기는 1968년부터 1975년까지로, 앵포르멜 미술의 특성과 기하학적 추상 구성이 결합된 화면을 탐구하였다. 2기는 1987년까지로, 극사실 기법과 자유로운 운필을 사용하여 원초적인 세계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3기는 198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인데 강렬한 원색의 붓터치를 구사하면서 구체적인 형상과 추상적인 형태를 융합시키고 있다.
그의 세 시기를 관통하는 특성은 무정형의 얼룩, 즉흥적인 필치,기하학적 형상들, 강렬한 원색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조화롭게 상호소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형식과 내용면에서 요소들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의 작품이 동양 전통 미술의 예술관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가 화면에 쏟아놓는 힘차고, 자유로운 필치와 불화, 단청의 색채는 단연 동양미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즉흥적인 필치는 동물, 식물, 인물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구상과 추상의 형태를 통합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래서 동시에 그것은 서구의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와도 맥락이 닿는다. 이와 같이 그의 작품에서는 어느 한쪽으로의 치우침 없이, 형식적, 내용적 측면 모두에서 동, 서양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이두식이 그려내는 조화의 이미지를 평론가 오광수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자지러지는 색채의 열기 속에 녹아 흐르는 이미지 서서히 녹아 흐르다 멈춘 어느 상태, 이미지의 파편들, 그것들은 토막 난 여체의 관능적인 부위들, 또는 곤충과 식물의 은유적인 형상들이다. 모든 사물이, 모든 세계가 녹아 흘러 일체가 되는 경지, 일어 범신(汎神)의 영역이다. “
샨 판은 한국 화단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다. 중국계 독일 작가인 그는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나, 지금은 북부 독일 함부르크에서 살고 있다. 샨 판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은 이것이 중국의 양식인지 유럽의 양식인지 궁금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기호를 모두 받아들이면서 개성 있는 독립된 표현을 찾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샨판은 중국 전통산수화의 배경에서 자랐고, 그것을 배웠기 때문에 중국의 전통적인 예술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추상적인 세계는 시(時)로 불리워질만큼 특유의 심원한 분위기를 갖는데, 이는 대기, 혹은 분위기라 해석되는 ‘윤(YUN)’의 작용 때문이다. ‘윤(YUN)’ 은 중국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로써 감성, 기술, 그리고 작가의 개성을 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통 중국작가로써 유럽에 온 샨 판은 서구의 현대 미술에 혼란을 느끼지만, 중국과 비슷한 철학적 세계를 갖는 앵포르멜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하지만 그는 개성적인 자신의 방식으로 중국과 유럽 양식을 조화시키는데, 이 또한 ‘윤(YUN)’ 의 작용이라 할 수 있겠다.
샨 판의 회화는 풍부한 색채, 무한한 공간,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조형적 형식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한 요소들로 분할된 화면은 흡사 하나의 구체적인 풍경처럼 보이지만 곧 흐려지는 경계선으로 공간은 확장되며 추상화된다. 그의 그림에는 구상과 추상, 가벼움과 무거움, 백과 흑, 정지와 움직임의 대립적인 요소들이 융합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수잔 클리프는 샨판의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세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엷은 채색은 견고한 형태를 느슨하게 만들고 공기와 같은 가벼운 효과를 일으킨다. 솔직한 의미를 갖고 있는 형태가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각각의 요소들은 천천히 떨어져 표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부서지기 쉬운 체계는 새로운 명확한 붓터치에 의해서 균형이 잡힌다. 형식이 있지만 동시에 비형식이 있다. 대립되는 힘들이 싸우고 있지만 동시에 균형을 이룬다. 하나가 된 구상과 추상. 최고의 수준으로 조화를 이루는 대립.”
이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