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실재(貢在)와 표상(表象)사이에서 -김태호의(내재율)-
김영순 | 미술평론가, 세종대학 언론문화대학원 겸임교수
1.<내재율>(InternalRhythm)의 위상 김태호의 최근작<내재율>은 일렁인다. 모더니즘 회화와 회화 이전의 경계에서. 존재와 일루젼(illusion)사이에서 작품과 관조자 사이에서. 그의 <내재율>은 일정한 가시거리 밖에서 바라 볼 때, 서로 다른 색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짜여진 직조처럼 하나의 톤을 이룬 표면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이른바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특성으로 요약되는 전일성(全一性:thewholeness)1)이 구현되고 있다.
그러나 관객의 시선이 그의 화면을 향해 가까이 접근해 가거나 좌우로 횡단 할 때, 화면은 리듬을 타고 출렁이며, 다색의 색점들이 산란하며 폴리포니(polyphony)를 이룬다
그리고 일정한 가시거리 안으로 접근하면 다색의 색층이 이루어낸 작은 바둑판 모양의 요철화면과 만나게 된다. 거기에는 다색의 물감 자체가 존재한다. 촉각적인 물감자체이면서 동시에 시각적 환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평면회화의 세계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모더니스트들이 연역적으로 상정했던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원리의 탐색에서 한 발 나아가 회화의 기능 즉 (관객의 시선을 향해 열려진 표면) 을 체험케 한다. 표면은 관객의 개인적인 지각체험에 따라 편차를 달리하며 유동한다. 돌담 같기도 하고, 조밀하게 짜여진 옷감 같기도 하고, 출렁이는 해면 같기도 하다. 또 다른 경우에 그것은 물감으로 덮인 평면으로서의 기본회화(fundamental painting)자체 일 수 도 있다.
그것은 김태호가 1780년대의 대표적 형상 작가로서 고유세계를 구축했던 다색의 일루전회화의 자취와 동시대를 주도했던 이른바 모노크롬회화라고 불리는 한국모더니즘 회화의성 과가 변증법적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융합된 경지 이다.
7-80년대 한국모더니즘회화의 면모는 일본이 거점이 되기는 했지만 해외미술관 전시2)와 국내외 평론가들의 평문을 통해 미술사적 차원에서 정리되어 왔으며 한국 현대 미술의 정체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평가 되어 왔다. 이들 전시에 선배 세대와 함께 대표작가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던 김태호는 동시대를 주도한 모노그룹회화에 길항하면서 그 성과들을 독자적으로 내면화하여 오늘의 <내재율>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에 대하여 오광수는 <비물질화의단계, 중성구조로서 바래진 정서의 표면>3)으로 이일은 <비물질 주의>와 <범자연주의>4)로그 특성을 파악하고, 그러한 특성이 국제주의 양식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구 모더니즘으로부터 일탈하여 이른바 한국미술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해준 징표가 된다고 진단 한다 이러한 진단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김복영 은 “한국인의 기질, 정신, 인성적 특성들의 표출에 의한” “정신과물질, 주관과 객체, 자아와 세계의 분리가 아니라 이들의 이원성을 공유한 통합의 징후”로서 “언어의 세계를 넘어선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물의 본성, 삶의 목적, 세계의 구조를 함축” 하며 “신체가 지각에 가세하여 세계를 前기하학적으로 이해 할 필요가 있고 상태적이고 가능적인 양상을 나타낸 다고 분석한다. 앞의 특징들은 김태호의 <내재율>에서 그대로 찾아진다.
그런가 하면 일찍이 미네무라는 형상에서 내재율로 전환되어 가던 작품을 앞에 두고 “인위와 자연성사이의 다중구조” 속에 한국미술의 특성인 <침투와 매몰의 취향>6)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이렇듯 7-80년대 한국미술의 특징적 요소들을 그대로 담보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김태호의 <내재율>은 박서보, 정창섭, 하종현으로 이어지는 한국모더니즘 미술 지도 위에 나란히 또 하나의 트랜드 마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2. <내재율>의 구조와 매개항 <내재율>은 요철 상태로 신비감을 자아내는 바둑판 모양으로 이루어진 표면이다. 공간의 분절단위는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는 붓 자국의 축적에 의해 형성된 것 이다. 캔바스를 돌려가며 일정한 호흡과 질서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 칠하는 가운데 형성된 수평과 수직의 구조. 행위의 중복 과정에서 형성된 부조상태의 작은 그리드는 두께를 더 해 가면서 분절단위를 강화해 가지만 그 위에 다시 올려지는 색은 아래의 분절과 단위 자체를 해체 한다. 결국20여 가지 정도의 색면이 축적 되고 그의 붓질이 멈춘 순간 화면은 상하 좌우 내외의 경계를 허물고 질서 정연하고 균질한 공간이 된다. 올 오버로 덮인 표면은 각층의 서로 다른 색을 은폐하여 분별이 생기기 전의 카오스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표층과 심층을 가르는 경계들은 모두 은폐된다.
작가는 이 표면을 잘 벼른 구두수선공의 칼로 깍아낸다. 붓으로 칠하거나 그리는 행위에 대하여 칼로 깍아내는 행위를 가함으로써 회화와 조각이 협업을 이루어 근대적 분업화 이전의 제작행위로 복귀한다. 이러한 복귀과정은 기하학적 법칙성을 구축해 가는 질서와 질서를 붕괴시키는 주관적인 행위 사이에서 실재와 표상의 경계까지 해체한다.
질서를 흐트러뜨리듯 이 색층을 깍아 내어 수직층을 평면으로 펼쳐 내면 올오버의 균질성은 해체되고, 점멸하듯 산란하는 색점들이 존재한다.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가 동시에 열리고 상하좌우 의 질서가 소멸된다. “지워냄으로써 드러나는 역설적 구조”가 구축된다. 촉감과시각, 시간과 공간이동 일차원에서 만나고 분산 되어 중심도 끝도 없이 전개 된다. <내재율>은 모더니즘의 회화 원리를 분산시켜 회화에서 미술로 미술이전의 <제작>으로 세계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3. 부언(posrscript) 수직 방향의 곡면인 체형상에 대하여 수평의 직선이 교차하는 반투명의 이미지작업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에어브러쉬 작업에 의한 미묘한 뉘앙스의 형상 세계. 그것이 많은 사람의 뇌리속에 기억되는 작가 김태호의 작품세계 이며, 그것은 우리의 현대미술사에 굳건히 자리매김 되어 있다. 그의 다색의 이미지 작업이 제작되던 1970-80년대의 사회현실은 고도경제 성장과 군사독재정치가 맞물려 침묵과 억압이 요구되는 시기였고, 그에 상응하듯 화단에는 모노크롬회화가 주도했다. 게다가 그가 속했던 작가군이 모노크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환경을 아랑곳 하지 않고 “유기적 형태와 색채라는조형요소가 평면속에 통합되어 동적인 이미지를 자아내는 작업”을 일관했다.
그러한 그가 오히려 개방과 자유의 사회분위기로 전환된 1993년 미야기켄미술관 전시에서이미지에서 탈 이미지로 전환하여 “회화의 본질 탐구”라는 묵시적 작업을 시작하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에어브러쉬 실크스크린, 목판, 동판,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어느 장르에서나 노련한 장인적 기질과 탁월한 조형성을 과시해온 그가 그러한 드러남의 모든 것들을 애써 감추며 회백색의 무조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는 <내재율>의 무거움, 진지함, 영구함, 격조, 느림 이라는 회귀적 역설법을 통해, 존재의 가벼움, 즐거움, 키치, 일회성과 속도를 추구하는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술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제기하고 있는것이리라. 마치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은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