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앤리 Bang & Lee
방앤리
카나리아 배포: 모든 거짓말에 대한 증명
2024. 11. 13 – 12. 02
리셉션 2024. 11. 13(수) 16:00
Gallery RHO
<방앤리의 툴킷>
임수영(미술사학자, 독립기획자)
‘연장’을 뜻하는 ‘tool’과 ‘상자’를 의미하는 ‘kit’의 합성어인 ‘툴킷(toolkit)’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 모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19세기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이 단어의 언급 회수는 인터넷과 컴퓨터가 대중에게 보급된 1990년대에 이르러서 급증하기 시작한다.[1] 그 이유는 당시 툴킷의 의미가 ‘응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들 때 도움이 되는 각종 루틴이나 보조 프로그램을 모은 집합체’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육에서부터 디자인, 철학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어떤 목적이나 복잡한 내용의 핵심에 효율적으로 도달하도록 수많은 툴킷이 제공되고 있다. 게임 제작 산업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툴킷은 게임 개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요소로, 개발자는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여러 가지 단계에서 프로그램 및 소프트웨어 툴을 사용하며, 각 툴은 게임의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거나 자동화된 작업을 처리하기도 하고 복잡한 코드를 최소화하거나 다양한 플랫폼에 배포할 수 있는 구조를 지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툴킷은 복잡한 시스템과 기능을 간소화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돕는다. 도구의 활용 여부에 따라 개발 속도와 품질이 크게 좌우되는 것은 물론이며,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현대 게임 개발의 중요한 기술적 전략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노화랑에서 열리는 방앤리(방자영, 이윤준)의 전시 《카나리아 배포: 모든 거짓말에 대한 증명 (이하 카나리아 배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필자는 툴킷에 관해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일까? 누군가는 작품과 전시의 핵심만 짚어 달라고, 시간이 없으니 논점을 요약하라고 조바심을 낼 수도 있겠다.
방앤리는 이번 전시를 일종의 게임, 보다 구체적으로는 걸으면서 탐험하는 유형의 게임인 ‘워킹 시뮬레이터(walking simulator)’의 방식으로 구상했다. 다만,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유통하는 갤러리라는 물리적 공간에 펼쳐진 게임에서 현실을 ‘증강’하거나 ‘가상’으로 대체하는 기기는 찾아볼 수 없다. 텍스트, 평면, 입체, 영상 매체로 구성된 공간만 존재할 뿐이다. 전시가 정교하게 구축된 하나의 게임이라고 가정할 때, 제목이 제시하는 것처럼 이번 게임은 플레이어-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베타 버전에 가깝다. ‘카나리아 배포(canary release)’는 조금씩 사용자의 범위를 늘려가며 새로 개발된 앱을 점진적으로 배포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즉, 관객의 입장에서 이번 전시는 개발 과정에 놓인 게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2]. 그렇다면 방앤리가 배포한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철학자 C. 티 응우옌에 의하면 게임의 목표(goal)와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적(purpose)은 섬세하게 구분되어야 할 지점이다. “게임의 목표란, 맨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거나, 공을 바구니에 더 많이 넣거나, 점수를 가장 많이 따는 등 게임을 하는 동안 이루고자 겨냥하는 목표물(target)이다. 반면, 게임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목적이란 애초에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 이유이다.”[3] 물론 목적은 다양할 수 있으며, 목표와 목적은 같을 수도, 또는 완전히 어긋날 수도 있다. 파티 게임에 참여하는 누군가에게 목표는 이기는 것이지만, 그 목적은 즐기는 것인 것처럼 말이다.
역설적으로 《카나리아 배포》는 게임 이길 자처하면서 동시에 게임의 특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굳이 이 전시-게임이 상정하는 목표를 정의하자면 걷기를 수행하는 것, 그 과정에서 관객-플레이어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지 않을까. 게임을 하는 동기야 각자의 상황과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카나리아 배포》는 일시적인 재미, 스트레스 해소, 능력치 향상 등의 목적을 가진 관객-플레이어에겐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붙이고 질문해 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거짓말”은 무엇이며 이것은 정말 “증명” 될 수 있는 것인가?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전시의 형식으로 구현한 게임을 배포하는 설정은 적합한가? 질문해 볼 수 있지 않나. 필자는 방앤리가 이러한 관객-플레이어의 끊임없는 물음을 유도하기 위해 어떤 ‘툴’들을 선별적으로 활용해 전시-게임을 구성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도구 1 – 시의 언어
시는 방앤리의 전작에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자 지도로, 때로는 평면 그림에 삽입된 문구이자 파편화된 장면을 연결해 주는 서사로 등장한 바 있다. 이번에 그들은 정서나 사상을 운율적인 언어로 압축해 표현하는 ‘시’라는 문학 양식을 게임 매뉴얼(game manual)로 상정한 듯하다. “Run! 뛰어!”로 시작하는 본문이 곧 제목인 이 시는 명령조로만 이루어져 있다. 시-매뉴얼은 다급하게 주문한다. 대상은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피하고, 점프하고, 총에 맞지 말라고. 전시장에 들어서며 자신도 모르게 방앤리가 설정한 게임에 ‘로딩’된 관객-플레이어는 밀려 들어오는 명령을 따라 수행할지, 또는 가볍게 무시할지 결정하게 된다.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말이다. 반면 「The Broadway Ave. En Route」 는 이미지로 구조화된 시로, 마치 부르마블 보드를 연상시킨다. 실존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브로드웨이 대로에 마치 존재할 것 같은 가게명—그리고 그들의 생존 여부—가 도로를 중심으로 마주 보고 있듯이 기재되어 있다. 여기에도 “여기서 시작합시다 “ 또는 “유턴하시오”와 같은 명령어가 자리 잡고 있다. 「파사드/페이스(Façade/Face)」와 「조안나 카페의 조식(A Breakfast at Joanna’s Café)」은 명령과 배경만 존재했던 곳에 파편적이지만 플롯과 인물, 그리고 서사를 덧붙인다. 결과적으로 시-매뉴얼은 전시-게임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이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정보로 존재한다.
도구 2 – 걷는 여정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움직임, 시간, 거리. 방앤리의 작업에서 여정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곳이자 재구성되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현실에서 메타버스로의 진입이나 인생에서 가장 낯선 곳으로의 상상이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게임에서 ‘여정’은 관객-플레이어가 걷기를 수행하며 시작되고 그 행위를 반복할 때 지속된다. 전시-게임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신작 유화 <Walking the Prairies>과 <The Broadway Ave.>를 중심으로 벽면에 설치된 다채로운 색감의—그러나 어딘가 메마르고 빛바랜 느낌을 자아내는—평면 작업들은 이 걷기의 배경이자 시각적 지표로 존재하며 여정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경험이 되도록 자극한다. 시-매뉴얼이 언급하고 있는 조안나 카페가 바로 여기인가? 이곳이 곡물창고인가? 익숙한 듯 낯설고, 황량해 보이는 북미의 어느 한 동네인 듯한 장소에 떨어진 관객-플레이어들은 나름의 방향성과 속도, 방식으로 이곳을 탐색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각적, 신체적 탐색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심리적, 정신적인 탐색전이 될 확률이 높다. 눈앞에 놓인 시청각 정보들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궁금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도구 3 – 상상의 과거
“다시 돌아가 보자.”[4] 방앤리는 제안한다. 시간을 되감아 보자고. 이렇듯 기억과 과거, 기록과 흔적은 방앤리가 작업을 통해 재차 방문하고 상상하는 대상이 된다. 《카나리아 배포》에 포함된 작업들은 예술계가 부여하는 ‘구작’ 또는 ‘신작’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작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상호 참조하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전시-게임이 설정하고 있는 배경과 상황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것으로, 지속적으로 반복 교류가 일어나는 두 사람의 기억을 일정 부분 재구성하고 있다. 그들은 기억할 수 없는 것,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의 간극을 허구(fiction)와 상상(simulation)으로 이어보고, 그 과정에 관객-플레이어가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카나리아 배포》을 구성하고 있는 툴킷을 되짚어 보면 우리는 작가가 언어, 행위, 시간 등을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방앤리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 목적 지향성을 거부하고 생산의 속도를 현저하게 늦추거나 효율 자체를 의심하는 방식을 택한다. 매끄러운 완결을 추구하는 대신, 완성이라는 환상에서 일부러 미끄러지는 요소들을 툴로 설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는 매뉴얼이 될 수 있고, 움직임은 심리가 될 수 있으며, 기억은 상상될 수 있다. 관객인 우리의 몫은 이렇듯 범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자유로움을 충분히 만끽하며 전시이자 동시에 게임인 현실에 접속해 보는 것이다.
[1] 전산용어사전편찬위원회 『컴퓨터인터넷 IT용어 대사전』 일진사, 2012.
[2] C. 티 응우옌, 이동휘 역 『게임: 행위성의 예술』 워크룸프레스, 2022, p. 16.
[3] 신보슬 큐레이터는 이러한 방앤리의 작업적 특징에 관해 “ 방앤리의 작품을 개별 작품으로 이해하기보다 매번 변화가능한 ‘프로젝트’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신보슬 「파편화된 시퀀스의 재구성을 통해 질문하기」 2023. 9. 1.
[4] 방앤리 <천 개의 얼굴, 끝없는 풍경> (2022) 작품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