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
작은 꿈 명품 100선
김덕기, 그림으로 키워가는 작은 꿈
“빨강, 하양 등대가/장군처럼 서있고/ 사람들은 즐겁다// 정박한 배들 아래로/ 흘러가는 구름/ 물결 따라 이리 저리 춤춘다.” 김덕기의 자작시 “청사포의 봄”의 일부이다. 그의 시처럼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은 넘실거리는 파도와 푸르른 창공, 호젓한 포구가 눈에 번쩍 들어온다. 우리는 울창한 숲과 해변, 시골길 등 빼어난 풍경에 잠시 도취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김덕기는 화려한 풍경을 통해 ‘가족의 행복’을 전달하고자 한다. 멋드러진 풍경은 가족과 함께 하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며, 가족이 있기에 주위의 환경은 그처럼 아름답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묘출하는 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주한 일들도 가장 중요한 일도 집에 와서는 우기의 빗물에 흠뻑 젖은 우산을 접듯 접게 된다. 그것이 가족이 있는 집이다. 그 안엔 달콤한 사랑도 있고, 위로함도 있으며 고약하게 쓴 시련도 있다.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할 시기도 있게 마련인데 어제로 간 오늘을 돌아보면 감사한 마음이 대부분이다.”(작가노트중에서)
그에게 있어 가족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자 활력의 발원지이다. 그가 선택한 모티브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생활의 즐거움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흡사 눈부신 아침 햇살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수만개의 섬광이 수면 위를 움직이는 호수의 수정조각처럼 그의 그림은 기쁨과 생명으로 충만하다. 물론 그런 기쁨의 비밀은 가족이다. 가족이 작품의 소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삶에 의미를 더해준다. 그는 행복한 삶의 정경에 시선을 고정하며, 이것을 소박하고 동화적으로 실어낸다.
또한 그의 작품은 우리 사회에 가속화되는 가족해체 현상을 돌아보게 한다.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는 본인은 물론이고 자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정서적 고통을 준다.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혼의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사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더 크며, 이혼한 부부는 물론이고 그 자녀들까지 가족 해체로 인해 극심한 정서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더 이상 가족해체의 문제를 방치하면 사회위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가정은 단순히 피를 나눈 구성원들의 집단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이다. 자신이 위기의 늪에 빠졌을 때 “왕이건 농부이건 자신의 가정에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자가 가장 행복하다”(괴테)는 말을 새겨둘만하다. 사랑이 붕괴된 가정은 상상할 수 없으며, 우리가 속한 가정과 사회를 사랑의 공동체로 단단하게 엮어가자는 것이 그의 작품의 주제이다. 그의 행복은 아득히 먼 훗날 성취할 지연된 꿈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드라마로 제시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화목한 가정 이야기
이번 전시는 김덕기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행복한 가족’을 테마로 한 것이다. <나무 아래서>와 <즐거운 식탁>,<행복한 세상>,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 등등. 그중에서도 <즐거운 식탁>은 식탁에 둘러앉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화면의 중앙에 자리잡은 집에는 하루일과를 마친 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저녁식사를 나누고 있다. 그에게 식사란 음식을 섭취하는 동작을 의미하기보다는 행복을 나누는 시간으로 이해된다. 즐거움을 나눈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축제이다. 웃음이 피어나고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또한 식사란 함께함이 행복의 조건임을 의미한다. 가족은 무엇을 주어서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이런 사실은 가족뿐만 아니라 한 쌍의 새, 한 쌍의 나무, 한 쌍의 강아지, 한 쌍의 물고기,한 쌍의 꽃 등에서도 확인된다. 이를테면 작가는 화면에 한 쌍의 이미지들을 배치함으로써 행복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즐거운 정원>은 잔치집처럼 술렁인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꽃과 나무, 잔디도 덩달아 흥이 났을 뿐만 아니라 주위를 휘젓고 다니는 강아지들까지도 떠들썩하다. 새들이 지저귀고 분수도 힘차게 물을 내뿜는데 이런 분위기는 화목한 가족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보조장치로 기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색점이 알알이 박힌 잔디밭은 축제의 장에 온 것처럼 꽃들로 북적댄다.
이번 전시에는 한 호흡으로 완성한, 필력을 강조한 <행복한 세상>을 볼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테마는 가족의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표현방식에 있어선 자유분방한 구성과 회화적 묘미를 한껏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질료감과 필획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이 눈길을 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오늘 있었던 일을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가 들려주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가족과 지낸 하루의 광경이다. 그림속에는 생활속에서 느낀 소감이랄까, 하루 일과가 깨알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자신의 생활 단면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작업의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다. 그림이란 ‘사실’의 전달 뿐만 아니라 ‘감흥’도 함께 전달하는 속성을 지니므로 어떤 상태로 나타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의 정황으로 볼때 작가는 감상자가 자신이 느낀 것과 같은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길 바라는 것같다. 그가 그처럼 인물을 동화적으로 표현하고 현란한 원색의 구사나 반복적인 색점 찍기에는 그의 이러한 바람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이 먼 길을 걷다가 지쳐 힘들다며 어려워하고 지쳐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를 보여주며 쉬어 가라고 손짓하겠습니다. 그 때 당신이 그 나무 그늘아래서 잠시 쉬며 자신을 돌아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깨우치는 것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미련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작가노트중에서)
그의 작업은 ‘지적 유희’나 ‘실험적인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그의 작품에 흐르는 기조를 말한다면, ‘행복의 유통’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아주 소박하고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티스가 자신의 그림이 쉼을 주는 ‘안락의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김덕기는 자신의 그림이 포근한 ‘안식처’가 되기를 원하는 것같다. 가정은 완벽한 곳이 아니지만 사랑을 실제적으로 주고 받음으로써 존재의 중심적 가치를 붙들게 한다. 가족이 펼쳐가는 행복의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가 전달하려는 바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구름 한 점없는 하늘처럼 해맑고, 어떤 면에서는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이런 낙천적인 그림을 통해 그는 지치고 상한 사람들에게 마치 풀무질을 하듯이 기운을 불어넣고 위로의 손길을 편다. 우리는 화려한 색점으로 채색된 행복한 마을과 단란한 가족을 보며 “무겁고 지친,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들과 작별을 하고” 새 힘과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작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고, 그 덕에 우리는 다시한번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이처럼 작가는 그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을 다독이고 날빛에 햇빛을 더하듯이 그들이 더 행복하게 되길 소망한다. 그의 이런 꿈을 향한 열정은 바위처럼 굳건하다. “인간은 정열로 행동할 때만 진정 뛰어나다”(Benjamin Disraeli)란 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에게 있어선 행복한 가족의 이미지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은 없을 뿐만 아니라 마구 가슴을 뛰게 하던 황홀한 절경(絶景)도 이 소박한 모습보다 더 소중할 순 없다. 중요한 것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으니 “눈을 감고 바람 뒤에 숨어있는/작은 진실들을 찾아”(작가노트중에서) 보라고 주문하는 것같다.
서성록(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