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영
한만영
경계와 장르를 넘어서는 자유의 시간
진휘연(sadi)
할 포스터(Hal Foster)는 모더니즘의 형식을 “매체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입체적 형상을 담아내기 위해 재현의 도구로 쓰이던 안료와 캔버스는 그 자체의 물성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움의 형식이 되었다. 모더니즘의 기운이 유럽을 뒤 덮었던 1910년대에, 그러나 뒤샹은 모더니즘적 매체와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 미술의 체제, 제도, 그리고, 역사를 문제 삼으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전형적 태도와 제작방식을 선보인다. 작품의 주제나 제목은 표현된 내용과 불투명한 관계가 되기도 하고, 작품이 하나의 기호처럼 작동하여, 도상적인 유사함도, 상징적 메타포도 넘어선다. 언어유희(punning), 신체미술(body art), 퍼포먼스, 대중문화에서 생산된 오브제나 광고, 그리고, 기존의 미술작품도 과감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뒤샹은 이미 1910년대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나 역사적 규범을 넘어서는 통합적, 또는 탈-장르적, 탈-범주적, 탈-시간적 작품들을 선보였고,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마저 해체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뒤샹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인용, 변용, 그리고 그 사이>
한만영이 아직 이립(而立)의 나이 일 때,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인용하고, 새롭게 변형시켜, 당시 대다수의 젊은 화가들이 지향했던 미니멀이나 모노크롬 같은 형식주의 모더니즘계열의 한국적 표현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한동안 작가의 정교한 재현술로 인해 하이퍼-리얼리즘(Hyper Realism) 양식의 작가로 불리기도 했지만, 한만영에게 이런 양식적 틀은 크게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한만영은 레오나르도를 비롯, 베르미어, 부뤼겔, 마그리트 같은 서구의 유명작가나 김홍도, 신윤복, 정선 등 한국 옛 작가들의 작품을 부분적으로 사용해왔다.
뒤샹이 미술의 역사와 제도를 문제 삼았던 것처럼, 한만영에게도 미술의 역사는 크고도 직접적인 주체 반응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작가의 유명 작품 사용은 흥미로운 면을 갖는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원작의 목적이나 평가, 의미나 주제로부터 자유롭다. 한만영의 시간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코드로서 사용된 이들은, 본래의 맥락(context)을 떠나 새로운 맥락을 덧입으면서,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
그가 사용한 유명 작품들은 이렇듯 독립되고 비어있는 기호로 작용한다. 그러나 바로 그 빈 곳은 모든 의미와 메시지를 생산하는 곳으로 변한다. 한만영은 그곳에 작가의 메시지 부여를 정지(유예)시키지만,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기억과 감정의 복잡한 경험을 중첩 시키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한만영의 예술작품 사용은 뒤샹의 고전 작품 이용이나 오브제 사용과도 구분되는데, 이유는 원 기호의 의미, 기의(記意)로부터의 소멸과 분리에 철저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특정 시간을 빌리지만, 구체성을 상실한 시간을 <복제>하는 그의 작품은 그래서, 오늘날 미술에서 요구되는, 특정 사조나 시대, 관습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이다. 그의 작품에서 새로운 개체로 변한 그림들, 과거 작가들의 흔적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의 애매한 지역을 차지한다. 바로 그 애매한 곳의 가시화가 그의 작업을 의미 있게 하며, 어떠한 시대적 사조나 조류로부터 자유로운, 작가만의 시간을 완성해준다. 때문에 한만영의 <시간의 복제>는 어제와 오늘을, 원본과 복제를, 형식과 내용을 통합하는 연합된 장소이다.
<그가 만난 시간의 흔적들>
그는 1980년대 이후 주로 평면과 입체를 결합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초기부터, 작가는 그려진 패널이나 캔버스 위에 오브제를 더하거나, 오브제 끼리 결합하기도, 패널이나 오브제에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다양한 방식의 작품을 제작해왔다. 여러 폭의 패널이 합해지기도 하고, 화면은 분할되면서, 사물로서의 오브제와 하나의 작품이 된 오브제 간에는 긴장만큼의 강한 끌어당김이 공존한다.
한만영의 작품은 서구의 유명 스타일과 제작 과정을 여럿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중세이후 종교화의 가장 주요한 다 폭 제단화 양식, 추상표현주의의 거친 붓질과 색면의 표현, 라우센버그의 콤바인 회화처럼 입체와 평면의 결합, 조셉 코넬처럼 박스를 이용한 오브제의 배열, 그리고 구상적 모티브와 파편화된 조합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번 개인전에서 한만영은 그의 일관된 개념을 좀 더 시적(詩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작품에서 회화 상의 조형 요소들과 그것의 실체와의 관계를 꾸준히 추구했다. 그런 의도는 최근 작품에서 더욱 강조되는데, 겸제의 금강산 그림을 차용한 대규모 작품에서, 작가는 화려한 원색보다는 여러 번 내려앉은 톤의 바탕위에 유사한 색으로 형체를 그렸다. 선으로만 표현된 형상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고 강하게 인식되기 보다는, 화면 안으로 파고들거나,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거부하면서, 바탕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역전시킨다. 그들은 화면 안으로 침잠했다가 다시 떠오르면서 시간의 끝없는 순환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화면 하단의 가는 줄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인해, 형상과 환영간의 인식은 더욱 애매해지고, 관객의 시각은 도전 받는다.
<시간의 기억과 재생산>
조형적 요소의 정해진 역할이나 관계에 대한 거부는 마치 그가 좋아하는 마티스가 1906년 <생의 기쁨>에서 보여준, 선이 곧 색이자, 면으로서, 드로윙과 채색으로 대비되던 작품 제작의 관습과, 선과 색의 순차적 서열을 거부하던 통합적 시도와 맥이 닿아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는 한만영의 마티스 콜라주를 다수 만날 수 있다. 전치되고 파편화된 마티스의 화려한 색채의 작품 이미지는 원본과 현재사이에서 무한히 진동하고 있다. 만화라는 주제만큼 신선한 내용과 색채를 사용했던 리히텐슈타인을 콜라주한 작품에선 선으로 표현된 구상적 요소로 인해,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작가는 팝문화의 아이콘을 독립된 환경 안에 위치지우며, 모더니즘의 조형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일상성을 충돌시킨다.
한만영은 30여년이 넘게 자신의 작품 앞에 진솔한 작가였다. 강한 목소리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지도 않았다. 과거의 조형적 요소를 사용할 때에도, 평면과 입체를 결합시킬 때에도, 새로운 기호로서의 변형에도, 관객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기를 원했던 작가의 의도는 조용하게 제시되어왔다. 그는 결정하기보다는 열어놓기를 원한다. 그가 그은 선이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포함할 수 있도록, 이질적인 형상을 가진 오브제의 결합이 구체적인 대상이 되지 않도록, 그는 늘 거리를 둔다. 그런 거리가 갖는 여유가 바로 한만영의 작품이고, 그런 작가의 시간이 관객에게로 전이될 때, 경험은 비로소 재생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