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사랑의 풍경
사랑- 그건 꽃이다. 우리네 삶처럼 꽃은 피고 진다. 비록 질 때 질지라도 우리들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 사랑, 그건 너무 활짝 피었다 비오는 날 하루 사이 다 져버리는 슬픈 꽃이다. 우리들의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의 사랑 풍경은 다 다르다. 스무 살 땐 거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볼 때 마다 부러웠다. 서른 살 땐 니들이 얼마나 갈까 싶었다. 마흔 살엔 그림 그리느라 너무 바빠, 아니 이 세상 모든 일이 그저 시큰둥했다. 쉰 살이 넘은 지금 사랑의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기분이다, 화가로서 클림트를, 피카소를 이해하는 대목이다. 내가 해도 행복하고 남이 해도 보기 좋고 영화 속에서 보아도 눈물이 난다. 꽃이 진다.
황주리
황주리 그림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애틋한 청춘 남녀의 열렬한 사랑 표현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생애 최고의 빛나는 순간들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반대급부에 실연의 아픔과 고독이 그려져 있기도 할 것이다. 18세기 조선시대 혜원(蕙園)과는 다른 우리시대의 도시 풍속화를 그려내고 있다. 언젠가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사랑이란 백 프로의 소통을 열망하는 상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그려내는 사랑 풍경은 그러니까 인간 소통의 결정체인 셈이다.
김형순, 미술저널리스트
황주리는 거대담론에서 소담론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표상을 화면으로 기록해왔다. 최근엔 사진 콜라쥬를 병행하며 영상과 회화의 교차점을 모색하고 있다. 일종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연상케 하는 이런 시도는 회화로서 열 수 있는 기록적 시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미 소설이자 영화이다.
이건수, 미술평론가
소설가 못지않은 다양한 테마를 그림 속에 불러 세우는 황주리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관찰자의 많은 눈을 가진 작가이다. 그녀의 독특한 발상은 4차원적인 열린 상상력의 덕분이 틀림없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그녀가 그려내는 일상은 대개 무방비상태에 놓여있는 일상을 고기 잡듯 채집한 옴니버스 스타일이다. 또한 개개인의 개인사를 감동적으로 녹여낸 훌륭한 파노라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마주하고 있으면 어린 시절 전혀 뜻밖의 종합선물을 받은 듯 뿌듯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김윤섭, 미술평론가
참 힘들이지 않고 잘 그린다. 황주리의 그림을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다. 작가에게는 사는 것도 일상이고 그림 그리는 것도 일상인 것처럼 보인다. 삶의 공간을 메워간다는 것은 산다는 것의 문학적인 표현에 다름 아니다. 작가에게 산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이 같은 말이라는 만큼 헌사는 없을 것이다.
김영민,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