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은
잇은
inter-
2024. 08. 28 – 09. 14
오프닝 2024. 08. 28(수) 16:00
Gallery RHO
<inter- (사이)>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점과 선, 그리고 면. — 캔버스와 확장된 프레임, 그리고 공간. 여기 최소한의 형식을 통해 공간을 이어내는 작품이 놓여있다. 김효정과 홍정욱이 함께하는 ‘잇은(itt-eun)’은 예술에서의 조형과 관계성에 대한 질문을 토대로, 각자의 작품에 대한 개별성을 내려놓고 오롯이 조형적 언어만을 탐구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그들의 뜻은 곧 미술에서 오랜 역사를 함께했던 재현(representation)적 묘사를 전복하고, 시각적인 표상과 형식적 조건만을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예술의 형태를 모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들에게 예술의 본질은 가장 단순화된 형태로 작품과 세계의 법칙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요소를 포착하기 위한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형태. 구상적 알레고리가 아닌 기하학적 질서와 그것의 증식. 이와 같은 형식은 작품의 조건을 형태와 질료에게 위임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는 추상이라는 형식의 근간이자 모태가 되는, 가장 이상적인 형식을 물리적 실체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했을 때 만들어지는 초월적 경지와도 같은 것이다.
전시 «inter- (사이)»는 두 인물 간의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감을 은유한다. 홍정욱은 정형화된 회화적 프레임을 넘어 공간으로 확장되는 입체적 회화를 제시해왔고, 김효정은 면과 선이라는 형식적 요소를 통해 풍경과 같은 화면을 구성하는 회화를 선보여왔다. 작품은 김효정의 회화로부터 홍정욱의 조형으로 이행하거나 그 역순을 병행하며 각자의 것을 융화해 내는 과정을 토대로 제작된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그렇기에 명확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관계성을 드러내는 이번 전시에서, 서로 간의 시간을 축적하고 있는 조형은 비로소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교환된 종합체로 완성된다.
이들의 작품은 궁극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향한다. 변형된 캔버스, 미세한 선과 면의 교차, 날카로운 마감. 추상적 이미지에 선행하여 구성된 형태는 점과 선, 면의 구성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주된다. 모더니티가 직선을 근간에 두고 있었다면, 잇은의 작업은 곡선을 향한다. 외부로 확장되어 뻗어나가는 곡선은 공간과 조응하기 위한 운동성을 내재한 조형적 도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떠한 구상이나 서사적 정보도 내포하지 않는 이상적인 형상은 이데올로기를 견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순수한 기하학의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작품과 그것이 존재하는 환경을 상호적 관계망 안에서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작품은 독립적인 개체이자 연합적인 환경 속에서 존재하는 관계적 대상으로 남아있게 된다.
홍정욱은 그의 작업을 ‘진화하는 것’으로 표현해왔다. 이러한 그의 작업 세계가 이어진 것일까, 잇은의 작품 역시 생장한다. 작가의 개입으로 조형되는, 그럼에도 외부와의 조응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은 ‘형식’의 층위를 무의미하거나 탈 맥락화된 것이 아닌 잠재적 이데아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로 구성해 내고 있다. 미묘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형상, 그럼에도 뻗어나가는 운동성을 토대로 표준화된 질서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이미지. 이상을 향하는 그들의 예술은 증식되는 담론 내부에 깊게 잠식한 근본을 탐구함으로써 유의미해진다. 그렇기에 잇은의 작품은 관념적 세계를 넘어 예술을 다시 이상적인 곳으로, 그리고 질료와 물질의 즉물적 영역으로 회귀하도록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