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석
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
송원화랑이 기획하고 있는 <新作招待展>의 세번째 작가로는 朱泰石선생이 초대되었습니다. 朱泰石선생은 70년대 후반 “사실과 현실전” 동인으로 활약한 극사실회화 화풍의 선구적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보다도 자연을 더 정확하게 그려내는 치밀한 기법으로 현대적 서정성은 물론이고 현대인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未泰石의 작품은 여러분에게 매우 신선한 감동을 불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991년 5월
송원화랑 노승진
서성록•미술평론가
어떤 작가가 자연을 그렸다고 치자. 그림 속의 자연이 실재의 자연보다 생동감이 없다거나 신비감을 제대로 동반하지 못했을 때,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은 공감을 주지 못한다. 그런 회화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생명의 무한성과 연속성을 깨닫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연을 왜소하게 만들어 그 가치를 여지없이 축소시킨다.
주태석은 현대미술에서 별로 탐탁치 않은 소재로 취급되어 온 자연에 오히려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며, 그 자연은 우거진 숲속의 나무를 통해 명쾌함, 청량함을 우리에게 흠뻑 안겨다 준다.
그리하여 인위적으로 재생 표현된 그림 속의 자연은 실제 자연만큼이나 매력적이고 근사해보인다. 주태석의 회화는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장미꽃처럼 향기롭다.
바탕에는 윤택이 흐르고 파릇파릇한 정원의 잔디밭처럼 잘 다듬어져 있다. 또 얼룩 묻은 길거리를 비집고 빠져 나와 뽀얀 가로등의 불빛과 만나는 그 순간처럼 시각적인 환기력을 그의 작품은 가득히 함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회화를 보면서 우리는 비좁은 가슴속에 자연의 풍족함이 새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풍경, 더 구체적으로 깊은 산 속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나무를 사실적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성록•미술평론가
비틀거리는 나무, 갈라진 나무, 생성이 중단된 나무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은 따분하고 지루한 고전적 사실주의에 의거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체로 도회지적이며 현실감각에 따라 개량된, 좀 더 발전된 형식으로서의 사실주의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작품 제작방법은 특정부분의 확대와 축소, 실체감과 일루전 간의 대조, 대상의 기계공학적 처리에 가까운 재현성의 극대화 등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눈부신 초록색이 따갑게 반짝이고 흰 담벽의 나뭇잎 그림자가 물결처럼 찰랑이며 나부끼는 것을 볼 수 있는 그의 회화가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거기엔 주의, 주장에 주눅이 들린 경직도 없으며 삶의 좌절도 없다. 오직 평온과 정적만이 흐를 뿐이다.
평온과 정적을 지키는 자연과의 교감작용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어쩌면 물량화된 사회 속에서 정서의 공복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산골짜기 한 귀퉁이에서 쉼 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샘물 한 방울의 의미를 강조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이 얘기는 다시 말해 자연은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는 자에게만 의미 있는 대상으로 비춰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월간미술> ’90년 7월호 전시 하일라이트에서-
작가의 말
“그림은 ‘체질’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체질을 찾고 그 체질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는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기보다는 주위에 너무 민감해 버려 쉽사리「자기 찾기」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중략-
우리는 본질을 외면하고 너무나 형식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자신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다. 그림에 있어서의 주제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繪畵的으로 소화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의식밖에 있는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하여 우리의 눈을 뜨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自然’의 모습과 이를 포착해서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은 自然을 아주 不自然스럽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갖게 한다. 묘사를 하면 할수록 멀어지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득해지는 自然의 실체이다. 自然의 한 단면의 묘사가 아닌 自然의 느낌을 포괄적인 이미지로 형상화 시키려는 내 노력은 결국 아주 不自然스러운 요식행위를 강요한다.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自然의 모습을 순간적인 찰나로 포착하여 그냥 스쳐가듯 자연스러운 형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눈앞에서 보는 自然보다는 관념적인 自然의 모습이다.
自然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후략-”
1989년 12월
-제5회 개인전 카탈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