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
김덕기 – 태양 아래서
일상의 경이
김덕기의 작품에 대해
10년을 약간 상회하는 김덕기의 작가활동은 일관된 주제들로 채워지고 있다. 초기의 라인 드로잉과 수묵 담채, 콘테 등 비교적 절제된 매재에서부터 화사한 색채로 뒤덮인 근작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주제는 가족과 그 가족을 에워싼 일상의 정경이다. 그러니까 기법상으로 보면 초기의 수묵 담채 위주에서 최근의 풍부한 색채의 구가에 이르는 변모를 드러내지만 내용상에선 일관된 항상성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근작의 명제들을 보면 <꽃수레와 가족> <해 아래서 – 가족>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가족 – 웃음소리> <즐거운 우리집> 등을 비롯해서 한결같이 가족과 그 주변이 대상이 되고 있다. 밝고 건강하고 눈부신 언어들로 구사되고 있다. 이같은 주제와 내용은 초기작에서부터 근작에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이전 작품에 나타난 명제들 <사랑 – 부부> <아내의 정원> <웃음소리 – 아름다운 순간들>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와 말이 된 아빠> <해 아래서> <꽃보다 더 좋은> 등 적어도 내용상에선 큰 변화를 엿볼 수 없다.
초기의 한지에 수묵 담채와 콘테, 목탄으로 구사된 간결한 선조 위주의 풍경은 그것이 비록 화사한 색채의 사용은 아니었어도 더없이 밝고 경쾌한 장면의 연출을 보인 것이었다. 대단히 생략된 구현임에도 오히려 풍부한 색조와 풍성한 상상의 나래로 뒤덮인 것이었다. 이후에 나타나는 화사한 색채들이 이미 이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눈부신 색채의 구사는 2000년대 중반 경에 오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꽃으로 뒤덮인 마당엔 꽃에 물을 뿌리는 아빠와 아기 그리고 강아지가 즐겁게 어우러지는가 하면 커턴 안의 실내에서 밖을 내다보는 엄마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집을 에워싼 나무들의 풍성한 잎들과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들, 그 꽃들로 대변되는 색채, 그 색채는 어느듯 즐거움, 행복함의 메신저로 화면 가득히 내려앉는다. <행복을 전달하는 화가>라는 서성록의 표현은 정확하다.
집은 크지 않다. 서너 식구가 살 수 있는 작지만 아담한 집, 유별나지 않고 평범하다. 그러나 집을 에워싼 나무와 마당의 꽃들로 인해 화면은 눈이 부신다. 꽃들로 불을 밝힌 정경이다. 고충환이 말한 <폭죽같은 빛이>, 색채가 쏟아진다. 은총처럼 쏟아진다. 눈처럼 내려 쌓인다. 어느듯 그것들은 모자익처럼 직조되어 더없이 탄탄한 밀도로 짜여진다. 그의 초기의 라인 드로잉이 그 자체의 리듬에 의해 부단히 서술을 벗어나 무한한 상상의 꽃을 피웠듯이 근작의 색채의 직조는 그것이 어떤 일관된 질서에 의해 구가되면서도 색채 자체의 충만함에 의해 따스한 생명의 불길을 피워올린다. 그것은 서술이 아니다. 맥박처럼 파닥이는 생명의 울림이다. 순간순간 살아있고 영원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장식이 아니다. 솟구치는 생명을 향한 찬가다. 수단으로 구사된 색채가 아니라 색채는 스스로 존재하기를 바람으로써 장식을 벗어난다.
그의 그림은 동화같다. 어른이나 아이들이 같이 보아도 즐거운 그림이다. 그래서 쉽다고, 깊이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진실된 아름다움은 쉬운 데서 오는 것이고 평범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그 이상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행복에, 자신의 즐거움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행복을 보상받는 듯이 보인다. 그의 그림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쉬운 그림이다. 집, 가족, 마을, 꽃밭 등 어느 하나 어려운 것이란 없다. 그럼에도 이 일상의 풍경은 즐거움과 행복과 눈부신 햇살로 인해 부단히 현실의 영역을 떠나 환상의 차원으로 진행된다. 간절한 기원으로 인해 현실이면서 동시에 현실이 아닌 마음의 풍경으로 나아간다. 꿈꾸는 자들 만이 지닐 수 있는 자유로움의 결정체다. 일상을, 평범을 경이로 바꿀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다란 사실을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준다.
오광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