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연과 향기
한국의 자연과 향기展
이중섭 ․ 박수근 ․ 김환기 ․ 장욱진 ․ 도상봉 ․ 오지호 ․ 이우환 ․ 이상범 ․ 변관식 이들 9명 작가는 한국의 근 ․ 현대미술을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든 귀중한 작가들이며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기기도 하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이들의 작품세계를 하나씩 들여다보기 보다는, 이들 작가가 한국의 자연 또는 한국의 정서와 마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형상화하였는지를 찾아보는 전시이다.
이중섭은 생동감있는 색채와 선으로 구성한 그만의 독특한 조형의식을 가지고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였고, 박수근은 50~60년대 우리생활을 서정적이고 진솔하게 그려 그만의 인간애를 표현한 작가이다. 김환기는 우리민족이 애용하고 만들었던 조선의 백자나 항아리 우리나라의 산과 달과 같은 소재로 한국인 마음과 정서를 형상화시켜 한국적 모더니즘 형식미를 제시하였다. 오지호는 일방적인 서양미술의 형식모방이 아니라, 우리나라 자연과 환경에 적합한 조형이념을 추구한 작가로 평생을 지조있는 삶을 살았다.
장욱진은 한국의 자연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왜곡 변형시켜 회화적 상상력을 극대화시켰고, 도상봉은 차분한 그의 성격답게 우리나라의 풍경을 찬찬히 캔버스에 옮겨내 있어야 할 곳에 사물이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청전 이상범은 관념화된 천봉만학과 기암괴석이 아니라, 평범하고 친근한 한국의 산과 들을 독자적인 화풍으로 한국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전형화 했다. 또한 소정 변관식은 한국적 정취가 넘치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정선 이후 맥을 잃었던 실경산수화를 다시 되살리고, 전통산수화에 대한 현대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가이다. 최근에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한 이우환 역시 우리의 정신 나아가 동양의 정신을 회화의 기본적인 조형요소인 점과 선으로 표출한 작가이다.
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9명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의 정서와 마음 그리고 한국의 풍경과 향기를 찾아보는 전시이다. 우리들 누구나 나름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와 풍경에 대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이런 아름다운 기준을 이번에 출품된 작품을 통해서 확인하고, 다시 재설정할 수 있는 좋은 전시가 될 것이다.
이중섭의 작품은 생동감 있는 색채와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감각으로 원숙한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낸 표현주의적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 그는 대상을 표현하면서 언제나 단순한 재현 이상의 그 무엇을 담아내고자 했다. 어린 아이를 비롯한 자신의 가족이나 소, 새, 비둘기, 물고기 등과 같이 그가 즐겨 다루던 소재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서 다분히 목가적이고 시정이 넘친다. 하지만 그 소재들 속에서 보이는 깊은 그리움과 고독의 그림자는 결국 이중섭 예술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촉매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자신의 고단한 인생 속에서도 아름다운 예술을 표출하고자 하는 질긴 예술의지가 드러난다.
박수근의 예술세계는 형식과 내용 양 측면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작품형식으로는 갈색과 회색을 바탕색으로 하여 화강석 표면 같은 거친 질감을 만들어 그 위에 선묘로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작품내용은 1950~60년대 우리나라의 궁핍했던 일상생활을 서정적이면서 진솔하게 표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고목, 도시 변두리의 마을풍경,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노인이나 아이들 혹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촌부 등 박수근 예술세계에 등장하는 인물과 주변 풍경은 아픈 전쟁의 상흔이 휩쓸고 간 궁핍한 시대의 자화상이다. 한편으로는 그가 가지고 있던 따스한 인간애의 자신만의 특별한 표현법이었다.
김환기는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 다듬고 사용했던 물건을 소재로 해서 한국적인 아름다운 정서를 드러낸 작품을 제작했다. 그가 즐겨 그렸던 산, 백자, 항아리, 달, 매화 등은 긴 한국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슬픔 그리고 행복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한 소재주의에 머물지 않고 고도로 절제된 조형성에 의한 엄격한 화면구성을 통해 내용과 형식이 일체된 표현을 보여준다. 모더니즘의 형식미를 가장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으로 풀어낸 김환기의 작품에는 한 예술가의 인생을 건 조형적 실험과 끊임없는 탐구로 빚어낸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장욱진 작품은 어린이의 그림에 흔히 비유하곤 한다. 어린이 같은 순수한 상상과 단순해 보이는 형태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엔 엄격한 구도와 치밀한 밀도, 그리고 회화적 활력을 주는 상식적 크기와 위치를 역전시키는 독특한 상상력이 있다. 그가 즐겨그리던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로 자유롭고 단순하게 구성된 것들이다. 이런 경지는 모든 사물을 편견이나 잡념 없이 볼 수 있는 순수한 상태 속에서 생명의 미묘한 약동과 울림이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고 단순한 작품은 매우 촉각적이며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도상봉은 주로 정물과 풍경을 즐겨 그렸다. 이 두 소재 가운데서도 특히 정물을 주로 그렸는데, 그의 작품 속의 대상들은 인물이나 풍경, 정물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정태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항상 깔끔하고 차분한 모습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의 조형적 특징은 대상들이 한결같이 다소곳하게 정해진 위치에 정지해 있는 상태, 바로 이러한 정태적 요소이다. 그는 대상을 실험적으로 해석하거나 해체하기보다는 어떤 대결의식 없이 받아들여 사실적이면서 수용적인 태도로 부드러운 도상봉만의 개성을 창조해냈다.
오지호는 서구미술을 일방적으로 수용했던 도입기를 지나 서양회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첫 세대로서, 형식모방이 아닌 조형이념의 본격적 수용과 자기화에 노력을 기울인 작가이다. 일본 유학시절 일본화단의 외광파에 영향을 받았으나, 일본의 풍토와 기후가 조선과 다르다는 것을 파악하고 자연을 그리는 그림도 당연히 달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민족의 따스한 감성과 우리나라의 밝은 태양광선, 자연환경에 알맞은 새로운 표현성 추구하여 마침내 가장 한국적인 인상주의 미학을 정립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평생 동안 인상주의 회화이념을 고수하고 발전시켰으며, 이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업적을 남겨 한국 근대회화사의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우환은 동양의 현대미술에 문제를 제기하고, 일방적인 서구의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회화의 현대성을 획득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사물의 상호작용을 제시하는 곳이다. 상호작용은 여백을 통해 구현되는데, 여백은 캔버스와 외부공간과 연결되어 상호 융합하기 때문이다. 무의미하게 그어진 것 같은 붓 자국들은 화면 위에 정착하지 않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처음에 짙게 찍혀진 점과 선은 차츰 희미해지며 끝내는 사라지는 것이 되풀이된다. 이것은 단순한 흐트러짐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인 카오스이므로 언제나 새로운 상호작용을 느끼게 한다.
小亭 변관식은 전통적인 산수화가로 출발하여, 한국적 정취가 넘치는 독자적 실경산수화의 한 전형을 이룩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역동감 넘치는 구도와 둔중하고 거친 필치로 그려낸 힘찬 산세와 기암절벽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붓에 먹을 엷게 찍어 그림의 윤곽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먹을 칠해나가는 ‘적묵법’과 그 위에 진한 먹을 튀기듯 찍어 선을 파괴하며 리듬을 주는 ‘파선법’은 소정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그의 작품은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그의 파격적인 그림은 전통에 매달리던 당시 화단에 대한 반발인 동시에 전통 산수화에 대한 현대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靑田 이상범의 독자적인 화풍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이며,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에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가 즐겨 그린 소재는 산수화에서 흔히 보던 관념화된 천봉만학과 기암괴석이 아니라,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친근한 나지막한 한국의 산과 들판이었다. 안정된 수평구도의 정확한 전개와 부드러운 세필이 반복된 독특한 필치, 스산한 심리적 분위기가 청전 작품의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근․현대 동양화에서 청전양식이라는 특별한 전형을 이룩하였으며, 전통적인 먹 색깔에 대한 아름다움의 재발견과 무한한 향토사랑에 대한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