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동
이수동 그림의 상상과 감동
임창섭(미술평론가)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있다고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는 손가락 보다도 짧은 칼만 있어도 죽일 수 있다.” 즉, 속된 생각과 번뇌를 죽이고 수양하면, 작은 것 하나가 만물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뜻이리라. 이수동 그림에는 종고선사의 이런 ‘촌철살인’(寸鐵殺人)이 들어있다. 격식을 꼭 갖추어야 하는 것이 수양이 아니라면, 이수동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수양의 일종일 것이다. 그는 대개 하루 종일 그림과 마주 앉아, 자신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언젠가 한번 보았을 듯한, 꼭 한번은 경험했을 것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림이 주는 감동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이것이 이수동 그림의 매력이다.
그의 그림은 번잡하지 않고, 방정도 떨지 않아 간결하다. 그림을 보는 이가 오히려 방정을 떨며 갖가지 상상과 상념에 빠져 감동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대처할 수 없게 코끝이 싸하고, 가슴이 서늘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본적도 별로 없는 해당화에 아련한 추억거리가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게 이수동의 ‘해당화’이다. 들판을 달려본 적도 없으면서, 들판을 달렸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바람이 분다’라는 그림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섬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을 그린 것이 ‘그 섬에 가고 싶다’이다. 그의 그림은 우리들의 팍팍한 삶에 짧은 미소와 가슴 아린 추억을 만드는 촉매제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수동의 그림에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되바라지고,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두개의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고 힐난 받는 세대들이 오히려 이수동 그림에 빠져든다. 그 세대들은 아름다운 해당화와 양귀비, 호젓한 섬의 정취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아니, 시퍼런 푸른 하늘을 무심히 바라볼 추억을 만들 수 없었던 세대들인데도 말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되돌리고 싶은 욕망을 간직하고 살았을 기성세대보다 더 풍성하게 감동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들은 이런 감동과 감성에 더 목말라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경험을 간직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자신의 보상을 위한 심리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목마름과 심리에 이수동의 그림은 턱 하고 내놓는 시원한 물 한잔이고, 배려이다.
그렇다고 이수동의 그림이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꿈만 꾸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지나간 추억과 아련한 감정에만 머물게 하는 그림이 아니다. 우울한 이들에게는 즐거움을,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는 작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설혹 그가 이런 의도와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수동 스스로가 아주 작은 일에도 희망과 즐거움을 느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배추사랑’은 배추 한포기를 그린 그림이다. 겹겹이 쌓인 배추 잎이 세상의 바람막이를 하는 재치가 즐겁다. 배추에서 이런 상상을 만들어낸 것도 즐겁지만, 누군가에게 항상 보호받고 있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그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위한 바람막이가 없다는 착각에 빠져들 때도, 언제나 늘 든든한 바람막이가 있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다시 갖게 하는 그림이다. 이것이 이수동 그림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감동이고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