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그림 · 큰마음
가슴에 저미는 백만원짜리그림 눈에 들지않는 일억짜리 미술
송수남, 이두식, 이석주, 주태석, 황주리, 이수동, 박형진, 이강욱
임창섭ㅣ미술평론가
‘미술품 경매’나 ‘아트펀드’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작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으레 신문이나 방송기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 값 때문이다.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값 때문에 여러 언론들이 기사로 다루는 것이다. 이런 작품 값이 형성되기 위해서 있었던 예술의 길고 험난한 과정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기사로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의 ‘프랑스미술100년전’에서 아카데미의 수장이었던 ‘레옹 제롬’이 ‘루베 대통령’ 앞을 막으면서, “멈추십시오! 이것은 프랑스 치욕입니다”라고 했던 것은 바로 인상파 작품 이었다. 이런 수모에 비하면, 인상파가 대중 앞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을 때 물감을 캔버스에 부었다느니, 어린아이의 유치한 장난이라느니 하는 힐난은 차라리 사소한 가십에 가까웠다. 이런 크고 작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미술시장이나 경매장에서 조차 인상파 작품은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값이 되었다. 150여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품이 되었고, 대중들이 가장보고 싶고 사랑하는 작품이 된 것이다.
인상파 작품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유명하게 된 것이 아니고, 평범한 대중들이 인상파를 이해하고, 작가들이 창조해 낸 아름다움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대중들 스스로의 미적 안목을 믿고 그림을 구입하는 적극적인 감상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인상파 작품이 높은 값으로 매겨진 것이다. 인상파가 완성한 활동을 벌이던 시기에 새롭게 떠오르던 신흥계층인 중산층이 인상파의 열렬한 후원자가 되었기에 그들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되었고,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까지 감동을 주는 것이다. 당시 신흥계층은 귀족들의 안목과 미적 취향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들의 미적취향과 안목을 키우고, 자신들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움을 쫓았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안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을 구입하면서 증명해 나갔다. 이런 열렬한 후원자들 덕분에 인상파는 21세기인 지금도 가장 사랑 받는 작가가 되었고 작품이 된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짧다고 하지만,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21세기에 우리들만의 인상파작품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작품가격에 놀라고, 자신의 안목과 미적취향에 확신하지 못해서 자신의 행동과 마음에 위축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저 타인의 평가에 휩쓸려 무관심하게 동의하면서, 눈으로 보고 머리로 느끼는 미술감상이 최선이자 최고의 문화 소비행위인 것처럼 자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타적이고 소극적인 문화소비행위는 결코 미술문화가 활성화 될 수 없다. 우리의 생활 속에,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예술은 결코 그 생명을 지켜나갈 수 없다. 또한 이런 소극적 문화소비 형태로는 우리의 삶을 문화적 삶의 모습으로 가꾸어 갈 수도 없다.
21세기 문화의 세기는 적극적 문화소비 형태를 즐길 줄 아는 문화인이 늘어가야만 문화는 다양하게 발전 할 수 있다.
우리들만의 인상파 작품을 찾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술시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이다. 그것은 작품크기에 의해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고, 심지어 예술적 가치까지도 평가하는 것이다. 작품크기를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은 올바른 미적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크기는 작지만, 광활한 예술세계를 내포한 미술작품은 여전히 제작되고 있고, 주목받을 만한 작품은 많다. 하지만 알면서도 누구도 수고를 자청하지 않는다. 작가를 철저히 연구하고,그가 제작한 작품을 면밀히 분석해서 냉정한 평가기준을 만들고, 여기에 미술시장의 영향까지 고려해서 작품가격을 결정하는 수고를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이런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 하지만 누구도 그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맡으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겉모습의 화려함과 크기로 적당히 평가하는 안이한 습관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술시장이 언제나 어둡다고 재단한다.
(작은그림·큰마음)전은 크기가 아니라, 진정으로 스스로가 만든 미적평가기준과 안목으로 그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찾게 하려는 기획이다. 그리고 소극적 문화활동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미적즐거움을 느끼려는 행동, 즉 작품을 구입하는 행동으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기획전이다. 미술감상이라는 문화활동은 단순히 보고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직접행동하고 소유하는 적극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진전해야 완성되는 것이다.
이 기획전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예술세계를 만들고,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8명이다.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화풍도 현격히 차이가 있지만 이들 8명은 작지만 자신의 예술세계가 분명히 표현된 작품을 출품한다. 정년퇴임한 후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송수남’은 현실과 관념을 초월한 인간의 영원성과 자연의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 이다. ‘이두식’은 내적인 표현욕구를 끊임없는 형상화 시키는 열정적인 작가이다.
그리고 현실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넘치는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이석주’와 ‘주태석’,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독특한 화법과 매체로 표현하는 ‘황주리’, 깔끔한 시어를 읽는 듯한 그림을 그리는 ‘이수동’, 그리고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우주를 그리는 ‘이강욱’, 과수원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이야기나, 이름도 없는 흔한 식물을 과장된 어법으로 그리는 ‘박형진’이 참여한다. 이 전시에서는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소장하는 커다란 즐거움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기획전의 부제(백만원으로 명품을 콜렉션 할 수 있다)라고 붙였다. 이제 생활과 미술의 완전한 결합은 각자의 안목으로 작품을 소장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화를 즐기는 것이고, 바로 큰마음 이다.
요즘 한국영화는 웬만한 성공으로 보는 관객수가 사오백만이라고 한다. 이것은 영화가 곧 오백만의 관객수가 고정관객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천만의 고정관객을 확보할 날도 올 것이다. 관객 백만이 들면 적자라는 영화계의 말은 적어도 그 정도의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관객을 확보하게 된 것은 그만큼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요인은 차치하고, 영화제작시스템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까지 영화가 산업으로 부흥할 수 있게 노력하는 많은 영화인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뮤지컬도 대박이 나는 것이 많다는 말이 들린다. 연극도 이에 지지 않으려고 다양한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 미술계도 관람객을 늘리고, 미술시장을 확대하려는 방안을 내놓고 실천해야 한다. 이제 우리미술계는 한국의 인상파를 등장시켜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