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그림 · 큰마음
작은그림 · 큰마음
《작은그림 · 큰마음》 전에 부쳐서
임창섭(미술평론가·문학박사)
노화랑에서 매년 열리는 《작은그림 · 큰마음》 전시는 올해 일곱 번째이다. 매년 같은 기획으로 일곱 번이나 화랑에서 지속해서 열린다는 것은 꽤나 의미가 있다. 물론 미술애호가들의 커다란 호응이 있었기에 가능함은 물론이다. 그동안 초대된 작가의 면면도 일곱 번이나 지속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올해 초대된 작가 김덕기, 김태호, 박성민, 박훈성, 이두식, 이원희, 장이규, 전광영, 주태석, 지석철, 한만영, 황주리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전시가 의미있는 것은 미술애호가를 확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문화실천 행위인 그림을 직접 사는 경험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을 사는데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나 글이 꽤나 있는 것은 어쩌면 정확한 방법이 없기에 여러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 될지 모르지만 흔히 놓치는 몇 가지를 더하려 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림을 사는 것을 배워야 좋은 그림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배우는 것에 인색한 우리들이라 흔히 남의 이야기나 기사를 보고 사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단지 사는 행위에 초점이 있는 것이지, 그림을 감상하는 적극적 행위로 사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수근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인정받지 못한 채 1965년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생활이 힘들었던 미망인은 남편의 유작전을 열었지만 그다지 반응이 없었으나, 5년 뒤에 열린 전시에서는 꽤나 작품판매가 잘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 현대미술 작품 중에서 가장 고가에 속하는 작품이 되었다. 만약에 박수근의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림 사는 법을 배웠더라면, 박수근은 어쩌면 지금보다는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미술품 구입은 투자가치가 있는 분야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것을 아는 서구유럽과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기업문화 활동의 하나로 작품을 수집한다. 단순히 수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품 수집을 하고 그것을 다각도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도 많다.
누구나 말하듯이 현대는 정보화시대이며 네트워크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는 단순히 선전이나 광고를 통해서 얻은 지식만으로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행위는 전 근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사기 위해선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다. 배우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이고 누구나 다른 방법이 좋다고 말하겠지만, 적정한 법이 있을 리 없다. 각자 자신이 배울 수 있는 적정한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이런 공부를 하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있다. 자신의 눈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로는 눈높이를 키우고 자랑하려면 그림을 많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즐길 수 있고, 이런 소양을 갖추고 그림을 감상하려는 눈높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이 필요하다. 폴 케티의 말처럼 21세기에 야만인으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하지만 눈높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보는 것을 즐겨야 하고,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관심이 생긴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좋아지고, 성적이 좋으면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공부가 가장 재미있으면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 관심이 생기게 된다. 관심이 생기면 공부는 더 잘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성적은 더 좋아진다. 적어도 그림에 대한 눈높이도 이렇게 즐겨서 관심을 갖게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엔 누가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찾아낸다. 그림이라는 것이 궁금하게 되면, 물어보고, 책을 읽어보게 된다. 화랑이나 미술관에 걸린 그림 앞에서도 진지한 태도를 갖추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눈이 트이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능력이 생긴다. 작가의 많은 그림 중에서도 정말 좋은 그림과 중요한 그림을 가려낼 줄 아는 힘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능력이 생기면 당연지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림을 하나씩 사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산 그림을 걸어놓고 가까이서 자주 보게 되면, 또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그림을 찾게 된다. 이제부터는 진정한 미술품애호가가 된다. 자신만의 눈을 가진 개성 있는 미술품애호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좋은 전시를 찾아서 그림을 보려 다니게 된다. 대부분 우리들은 외국 여행을 가면 그곳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르기 마련이다. 그곳이 그 나라의 문화 역사를 가장 쉽고 빠르게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책으로 본 것보다는 직접 눈으로 마주치는 것이 훨씬 감동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미술품애호가가 되기 위해서는 배우고,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많이 보아야 눈이 생기고, 높이가 생기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흔히들 자신이 많이 안다고 착각해서 생기는 일인데, 안내자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에는 친구가 가진 그림은 나도 가져야 한다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경향이 있다. 벼르고 별러 새로 산 양복을 입고 나섰는데, 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내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당연히 좋은 기분이 들 리 없다. 내가 든 핸드백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는 여자 친구도 보았다. 하물며 친구의 집에 걸린 그림과 같은 것을 내 집에도 걸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겠다는 부화뇌동이라는 심리가 작용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해도 자신의 눈높이에 어울리지 않으면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안내자를 만나야 한다. 그 안내에 따라 자신의 눈높이를 확인하고 자신의 안목을 확인해야 좋은 그림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안내자를 신뢰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거치고서야 미술을 사랑하는 문화를 즐기는 문화인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만 화려하게 치장한 문화인으로는 결코 미술품애호가가 될 수 없다.
미술품을 산다는 행위는 사실 문화를 소비하는 행위이다. 결코 경제적으로는 생산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생산적인 소비야 말로 우리의 삶에 활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래서 미술품을 사는 일은 자신의 안식처를 만드는 일에 하나이기에 먼저 마음을 변화시켜야 하는 일이고, 태도를 변화시켜야 하는 일이다. 쉬운 예를 들면, 그림 한 점 걸어 놓고 온가족이 모여 각자의 느낌을 말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의 풍경은 아닐까. 아빠, 엄마가 책을 읽으면 아이들도 그 옆에서 책을 읽는다. 엄마가 텔레비전에 빠져있으면 당연히 아이도 빠지게 된다. 나만의 안식처는 말로만, 생각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안식처는 거실과 안방이 깨끗하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열정을 느끼게 하는 것,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완벽한 안식처가 된다. 하지만 책 한 권 없는 그림 한 점 없는 삭막한 집이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는 없다.